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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라톤 후기] " 저기, 계속 이렇게 뛰실 거예요? "
| 이경탁 | 2016.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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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속 이렇게 뛰실 거예요? "
16년 춘천 마라톤 풀코스를 25km 즈음 달렸을까, 옆에서 타박 타박 잘도 뛰시던 아주머니께 내가 물었던 말이다. 
청주 모 마라톤 동호회 티셔츠를 입고, 나와 같은 F조에서 출발 했지만 20km가 넘어서야 만났던 아주머니. 180cm인 나에 비해 머리 한 개쯤 작은 키를 갖고 계셨고, 처음엔 여리여리하다고 느꼈지만, 뒤에서 아주 당차게 뛰어오시던 아주머니.
" 탁---탁---탁---탁--- " 긴 다리로 성큼성큼 뛰어가는 내 뒤에서 " 탁탁탁탁탁탁 "하는, 여태까지 뛰어오는 동안 듣지 못했던 발소리가 나를 뒤돌아 보게 했다.
축지법이라도 쓰시는 듯, 나와 속도가 같다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될 만큼 조그마한 아주머니와 함께 5km, 10km를 같이 뛰었다. 
위의 저 질문을 할 때까지만 해도 사실 놀라움과 자신감이 섞여 있었는데 30km가 넘어서 마주친 바나나와 초코파이에 매료된 후 아주머니의 뒷모습은 영영 볼수 없었다.


기나긴 파병을 마치고, 한 달간의 꿀같은 휴가를 얻었다. 이번 휴가의 목표는 마라톤 풀코스 완주 였고, 마침 춘천마라톤이 꼭 휴가중에 있어서 신청을 했다. 함정에서 지낸 6개월간의 파병은 마라톤 준비에 적합하지 않았지만, 당시에는 내가 준비가 덜 되었다는 생각도 못 한채 춘천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터미널에 내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예약한 숙소로 발을 옮기길 15분, 공기가 찼지만 상쾌했고, 다음날 모일 공지천 운동장을 기웃거리다 숙소에서 잠을 청했다.

마라톤 당일, 나름의 컨디션 조절이었다고 해두자.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몸과 머리가 확실히 깨어있도록 했고, 초콜릿과 연양갱을 먹어서 에너지를 보충하고 물을 충분히 마셨다. 거리에는 달리기 위해 모인 사람들 외에도 운영 요원들과 행상인들이 뒤엉켜 정신이 없었다.
' 지금 몸을 풀어야 하나? F조 출발선은 어딜까? 배가 살살 아픈데 화장실에 사람은 왜이렇게 많아? 지급받은 민소매를 입을까? 아니, 조금 추운데? '
불안한 마음에 집합 장소에 일찍 도착해 한시간 남짓 기다리는 동안 첫 출전의 어리숙함이 드러났고, 온갖 생각이 들어 허둥지둥, 안절부절 했다.

출발 20분전, 내가 받은 번호표는 F 그룹 9294번 이었고, 내가 받은 책자는 3시간 40분 페이스 메이커가 F 그룹에서 가장 빠르다고 안내하고 있었다. 또한 지정된 그룹에서 출발하지 않으면 기록이 무효 처리된다고도 안내했다. 그리고 중요한건, 내가 같이 뛰고 싶은 페이스 메이커는 C그룹의 3시간 20분 페이스 메이커였다.
' 내 목표기록은 3시간 30분인데, F그룹 페이스 메이커 보다 빨리 뛰는게 나을까? C그룹 페이스 메이커보다 늦게 뛰는게 나을까? 나는 후자를 선택했고, 아주 어리석은 선택이었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드디어 앞쪽 그룹부터 출발하기 시작했다. 빠르게 치고 나가는 흑인 형들의 모습을 화면으로 바라보며 슬금슬금 출발선으로 갔다. 조금이라도 앞에서 뛰면 유리한줄 알았다. F그룹에서 가장 앞에서 출발하고 싶어 꾸역꾸역 걸어갔다.
F그룹도 출발!  내 목표는 C그룹의 3시간 20분 페이스 메이커 보다 조금 늦게 결승점에 들어가는 것. C그룹과 F그룹의 출발시간 차이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그 사람을 찾아야 했고, 달렸다. 
풀코스를 뛴다는 두근거림과 나름 완벽?했던 컨디션 조절로 다리는 허공을 딛는 듯 했고, 콧속으로 또 입으로 들어오는 맑은 공기, 멀리 내다보면 눈이 아닌 가슴에 와 안기는 듯한 춘천의 풍경덕에 힘든 줄을 모르고 뛰었다. 빠르게 뛰었다. 딱 20km 까지만. 가도 가도 3시간 20분이 프린팅 되어있는 풍선은 보이질 않았고, 나는 그렇게 지쳐갔다. 포털에 마라톤만 검색해도 곧잘 보이던 오버페이스, 그것이었다.

내가 달리는 속도가 느려지고 있다는 것은 그동안 내가 지나쳐왔던 사람들이 나를 지나쳐 감으로써 알게 됐다. 다시 처음 이야기로 돌아가면, 그 아주머니도 그렇게 만났다. 뒤에서부터 달려오시던 분과 우연찮게 속도가 맞아 10km 정도 같이 뛰었고, 결국은 따라갈 수 없었다.
처음엔 자신감을 넘어선 자만심으로 어떻게든 따라가 보려고 했다. 나는 해군에 몸을 담고있는 군인이었고, 해군 중에서도 나름 날고 긴다는 부대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질수 없었다. 지고 싶지 않았다. 뭐, 하지만 살다보면 마음과 몸이 같지 않을때가 많다.

바나나를 핑계로 아주머니를 놓아드렸었던 그 지점부터 피니시 라인까지는 고통과 인내의 시간이었다. 무릎과 골반과 발목과 발바닥이 유리로 만들어 진듯, 땅을 내딛을때마다 깨어지는 고통은 ' 내가 왜 여기 있는걸까, runner's high란 대체 뭘까'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혹시 추울까봐 입고간 타이즈에는 하얀 소금꽃이 피었고, 밝게 웃으며 힘내라고 외쳐주는 어여쁜 친구들 앞에서도 인상을 펼 수가 없었다. 에너지겔과 게토레이와 스펀지가 없었다면 분명히 완주하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꿈꿨던 결승라인에 도달하는 내 모습은 이러했다. 40km나 뛰었으니 힘은 조금 빠졌겠지만, 밝게 웃으며, 조금이나마 '스퍼트' 라는 것을 할 수 있을것만 같았다. 목표 기록에 넉넉히 골인하는 여유, 긴 여정의 감상을 표정에 여실히 담아보이며 골인 하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내 다리가 결승선을 통과해서, "삐---" 하고 기록을 측정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정신이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했다.

완주메달과 요깃거리를 받았고, 아침에 맡겼던 짐을 찾았다. 휴대폰 전원을 켰고, 문자를 확인했다.
최종 기록은 3시간 29분 03초. 성공인지 실패인지 모를 기록과 지친몸에 씁쓸한 웃음만 나왔다.
마라톤을 완주하고자 했던 그 목적을 잃어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마주친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 오늘은 분명 '가을의 전설'이었으나 나만 충분히 느끼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주저 앉아 한참을 쉬었다. 찜질방까지 어떻게 걸어 갔는지는 기억하고 싶지도 않다. 그렇게 버스를 타고 집에가서 꼬박 3일을 앓아 누웠다.

생애 첫 마라톤은 풀코스 완주라는 말이 무색하게 고단했다. 그리고 많이 배웠다. 마라톤을 뛰는 요령은 물론이고, 과한 욕심을 버려야 한다는 것, 겸손해야 한다는 것.
" 계속 이렇게 뛰실 거예요? " 
끝까지 이 페이스로 뛸거냐는 얘기였고, 자신감 섞인 물음이었지만 창피한 질문이 되고 말았다.
그래도 난 계속 이렇게 뛰어야 겠다. 다음 마라톤, 또 다른 마라톤을 하기 위해서 많은 분들이 이렇게 뛰고 계실거라고 생각한다. 질문의 뉘앙스를 조금 바꿔서, 계속 이렇게 뛸거냐는 물음은
앞으로의 달리기 생활에 대해 묻는 말로 바꿔야 겠다.
지금 당장은 조금 겁에 질려있지만, 계속 이렇게 뛰어서, 좀더 나은 모습으로 도전할 다음 마라톤 역시 춘마가 될것 이다.


이름: 이경탁, 배번: 9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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