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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월의 순례자, 가을을 달렸다.
| 이진철 | 2016.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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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와 별이 번갈아 뜨는 세월의 윤회 속에 올해도 어김없이 가을이 찾아 왔다.
 "올 시월에도 한 바퀴 돌겠네?"
여름내 신선 놀음 하다가 선선한 해거름이면 탄천길을 달리는데 눈치가 팔십리인 아내가 묻는다.
 "암, 고행의 순례 해야지."
나에게 의암호 둘레길은 도전과 극복의 땀이 서려 있는 곳이다.
 2009년 현충일에 마라톤  풀코스를 첫 완주 하고, 그해 9월 중순에 서울에서 하프코스를 동반주한 달림이가 "춘마는 갈겁니까?" 라고 물은적이 있다. 
(춘마라는 말뜻도모르고)  "가지요"라고 대답 하자 마자, "참가신청이 마감 됐어요"라는 말에, 서운함과 함께 일년의 기다림에 조바심이 났었다.
이후 춘천마라톤은 단골 일번 대회로 사연도 많았지만 한번도 참가를 거른적이 없고, 생일(음력 9월 28일) 무렵에 개최 하여 애착이 간다. 

올해도 설레는 마음을 가다듬고 전철 첫차에 몸을 실었다.
산자수려한   춘천은 공기도 쾌적한데 오늘은 구름이 잔뜩 낀 하늘에 스산한 바람이 분다.
마라톤에는 자외선 노출과 체온 상승의 우려가 없는 더없이 좋은 날씨이다.
"저녁 굶은 시어미 상이 참, 예쁘고 바람이 신바람이네!" 
만사는 하늘이 도와야 수월한데 일기가 길조라서 뿌듯한 마음으로 무사 완주를 다짐한다.

마라톤은 힘겹고 고단한 운동이지만 그것은 나중 일이고 출발 할 때는 기분이 좋다.
분위기 뛰우는 식전 행사에 이어 형형색색의 달림이들이 출발 신호에 봇물 터지듯 달려 나가는 모습은, 옥쟁반에 흩어지는 구슬처럼 가히 환상적이다.
마치 폭풍에 밀리는 파도처럼 주자들은 인파의 너울이 되어 실타래 풀리듯 흘러 가고, 지축을 흔드는 구보의 맞울림은 두다리를 힘찬 역동으로 감전 시킨다.
게다가 구불구불한 산굽이를 비껴 돌고 에너른 의암호를 에워 도는 주로의 절경은 한층 마음을 들뜨게 한다.
하지만 초반의 흥분은 금물이기에 천천히 사십여분  달리자 명경 같은 호숫가에 우뚝 선 삼악산의 장관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구도를 잡아서 바라보니  능선과 골따라 굽이진 단풍과 소나무 군락이 조화를 이루고, 군데군데 바위등에 홀로 꽂힌 나무는 검은 구름 아래 백로처럼 유난히 눈길을 끈다.
산은 험할수록 아름답고 단풍은 꽃보다 예쁘다고 했던가? 
날이 맑으면 삼악산을 색사진으로 반사하던 의암호가 오늘은 흐린 날씨로 한폭의 수묵화를 연출 하고 있다.

숲은 눈을 맑게 하고 물은 마음을 맑게 한다. 
한 시간여를 산과 호수를 바라보며  달렸더니 심신에 청기(淸氣)가 흐르고 발걸음이 가볍다. 
몸도 가뿐해지자 주변의 달림이들을 살펴 보는데 '축  100회완주', '수능 대박',  '건강 회복',  ' 취업 성공' 등 자축과 기원문을 등에 붙이고 달리는 분들이 많다.
나에게도 비만한 체구의 두 아들이 운동으로 건강하기를 바라는 간절한 소망이 있다. 
그러나 아들들은 새벽 부터 밤늦게까지 일하는 직장을 핑계로, 운동 해서 금이 나온다 해도 누울 와(臥)자가 제일이란다.
그렇다고 억지로 고삐 잡고 달릴수도 없어서 자식은 애물이라고 근심에 바람 잘 날이 없다. 
"아들들아!  의사가 사촌이 되면 때가 늦다. 누워 있는 삼정승 부러워 말고 내 한 몸 튼튼히 가지라"고  내딛는 발짝마다  아비의 단심으로 염원 하고 또 염원 한다.
14Km 지점에 이르렀을때, 아버지는 딸을 태운 휠체어를 밀며 달리고, 딸은 손수건을 흔들며 아버지를 응원 하는 모습이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 
조금 더 달리다 보니 탁발마라톤을 하시는 진오스님이 이웃사랑 캠페인 유모차를 밀며 달리고 있다.
갑자기 하늘에 드리운 구름 장막이 사라진듯 세상이 밝아진 느낌이다. 

초심으로 그럭저럭 달리다 보니 어느새 하프 지점이다.
나는 제멋대로 운동해서 그런지 마라톤을 130여회 완주 했어도 이븐페이스가 되지 않는다.
항상 하프 지점을 지나면 속도가 느려지고 쉼없이 달리지만,  뛰다 걷다를 반복하는 주자에게도 때로는 순위가 뒷전이다.
그래도 흐린 날씨에 바람까지 불어서 그런지 이전 페이스를 유지하며 25Km까지는 잘 달렸는데 오늘도 여지 없이 속도가 늦춰진다.
 "그래, 누운 나무에 열매 안 열지. 한여름에 잘 놀았으니 그냥 실력 대로 달리자."
여름에 땀 흘리지 않으면 가을에 빈손이라고  때늦은 후회를 하면서  짐덩어리 욕심을 하나씩 내려놓는다. 

힘들때는 시쳇(時體)말로 "고통도 즐기라"고 한다.
문득 7년전, 향관(鄕關)의 마라톤대회에 첫 출전 해서 완주에 실패 했을때, 회송차 안에서 칠십대 후반의 노인장이 나를 위로 하면서 당부 하신 말씀이 명징하게 떠오른다. 
 "운동은 잘먹고 잘자고 해야 해. 운동은 아주 고되게 하고 마라톤대회장은 그냥 축제를 즐기는거야. 여기 뭣하러 왔어? 선수도 아닌데1등하러 왔어?.... "
생각해 보면 노인장의 말씀이 아름답다.
어찌 따르지 않으랴만 운동을 고되게 못하는 것이 탈이고, 즐기며 달리것은 잘하는 편이다. 

고된 운동을 하겠다고 작심 7년차 맹세를 다시하면서 힘을 조금 더내어 34Km 지점에 이르렀으나  분위기가 썰렁하다.
저출산으로 부대가 없어진다고, 해마다 주로 양편에 도열하여 씩씩하고 호사스럽게 열원해주던 102보충대 장병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산천은 의구한데 응원부대는 가고 없구나....." 
사위는 촛불처럼 기력이 쇠한 몸에 서운함이 겹쳐 발걸음이 무겁다.
'제한시간 민폐 없이 발가는 대로 달리자'고 손톱 만큼 있던 욕심마저 비우지만 기진한 다리는, "쥐나면 백약이 무효야. 이제 쉬어 가자"고 보채기 시작 한다.

힘든 만큼 종착지는 가깝다는 희망에 주저 앉는 다리를 몸으로 끌며 35Km 지점에  이르니 반가운 비가 살살 내리기 시작한다.
가믐에 시든 작물이 단비에 소생하듯 지친 몸에 생기가 돈다.
 "그래, 오늘 일진이 좋아. 하늘 흐리고 바람불고 막판에는 비가 내리고......"
몸이 더운 체질이라 매번 춘천마라톤에서 머리에 물을 붓고 뛰었는데 오늘은 단 한번 예외의 사건이 되었다.
인간사 마음대로 안되어 재미 있지만, 마음대로 되어서 사는 맛도 난다.
흐뭇한 마음으로 소양2교를 지나치는데 뒤에서 누가 부른다.
명문클럽에서 거북이 신세가 미안해서 유니폼을 입지 않았어도 봉사회원이 알아보고 콜라 한잔을 따라주면서 "이제 거의 다 왔어. 힘내!"라고 응원해 준다.
고마움에 힘든것을 잠시 잊고 달리다보니 골인아치가 몇백미터 앞이다.
이제는 발짝의 4박자 구령으로 숫자를 세어 본다. "하아나아, 두우우울, 세에에엣.....여어어얼".
열까지 헤아리기 몇번만에 골인 매트를 힘차게 밟았다. 
오늘의 주인공이 나 자신인듯 내리던 비도 골인후 멎는다.

 "아, 일곱번째  춘천 마라톤! 행운의 숫자처럼 기분좋게 완주 했구나!" 
고생 끝에 낙이라고  희비가 갈마든 백오리 까막길이 꽃길로 보이면서 들숨 따라 행복감이 가슴으로 밀려 온다.
누구는 완주시간을 보고 거북이라고 비웃겠지만, "좋은 공기 마시고 보약 한첩 잘 먹었다"는 칠마회 형님들의 말씀처럼, 완주 보약에 들뜬 마음은 하늘을 날고 있다.
인생의 목적은 즐거움이고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이 자신의 삶이다.
땀으로 정화 되고 고통으로 승화 되는 마라톤은 내가 선택한 수행의 운동이기에 후회는 없다.
오로지 뛰어서 건강 하고 함께 달려서 즐거우면 그저 그만이다. 
때로는 힘겨워서 몸살을 앓기도 하는데, 세단풍이 수놓은 산자락에 능라를 편 듯한 의암호는왜 이렇게 내가슴을 고동치게 하는가? 
나는 올해도 어김없이 시월의 순례자가 되어 전경 좋은 유람 코스를 온몸으로 달렸다.
아니, 내가 태어난 철이라고 계절 타는 가을을 뭇사람과 함께 달렸다. 
홍엽이 짙어지는 가을을 땀이슬로 적시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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