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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천, 한 잎의 단풍이 되어(배번 486)
| 박길엽 | 2016.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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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춘천, 한 잎의 단풍이 되어

남편의 휴대폰에서 기상나팔소리가 울린다. 새벽 다섯시.
군대시절이 지겹지도 않은지 저 기상나팔소리는 여전히 우리집의 아침을 깨운다. 
남편보다 먼저 일어나 레인지위에 밥솥을 올리며 습관처럼 창문을 열어 날씨를 본다. 약간 쌀쌀한 바람이 들어온다. 달림이들이 좋아하는 기록이 잘 나오는 날씨가 될 듯한 느낌이다.
기록(?). 언감생심이다. 지난 몇 년 동안 나를 괴롭힌 위통과의 싸움이 올해는 절정을 달해서 지난 8월초부터는 아예 단식과 절식을 반복해야만 했고, 이제 겨우 회복식을 먹는 단계인데 말이다. 다만 완주할 수 있기를, 회수차만은 타지 않게 되길를 빌고 또 비는 며칠이다.

남편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춘천으로 향하는길.
그러고보니 며칠 전에서야 남편이 직접 운전하고 다녀올려면 힘들겠단 생각을 했다. 그제야 미안한 마음에 그 얘길 꺼냈더니, 이젠 기차도 버스도 모두 마감이어서 다른 방법은 없다고 간단히 넘겨버린다. 이런땐 남편의 무딘 감각이 마음에 든다. 
하긴 근래 몇 년 동안 내가 계속 아팠으니, 그때마다 날카로워진 나를 데리고, 한의원으로 병원으로 용하다는 곳을 찾아 다녔으니 많이 무뎌진 것이겠다. 
처음엔 동네의원부터 몇 개월, 그리고 동네 의원을 다 돈 다음엔 근처병원을 거쳐 대학병원까지 그리고 지방의 유명하다는 병원까지 참 많이도 다녔다. 그때마다 남편은 옆에서 말없이 데려다 주고 지켜주고 했다. 

남편은 파워젤이라는 걸 챙겨주며 10km마다 먹으라고 강조한다. 같이 뛸 거면서도 네건 네가 챙겨라는 남편의 저 차가움이 이젠 익숙할 때도 되었건만 마음 한 켠에 있던 섭섭함이 묻어나왔나 보다. 생각지 않게 날카롭게 말이 나왔는데도, 남편은 무덤덤하다. 하여간 속내를 알 수 없는 인간…

그렇게 아팠고, 단식으로 인해 사람들은 허깨비가 돌아다닌다고 할 정도로 몸무게가 형편없이 내려갔지만, 토요일과 일요일 아침엔 남편과 동호회분들과 어김없이 서울대를 달렸다. 비록 힘은 없지만, 운동복을 입고 땀을 흘리면 이상스레 아프지도 않고 힘도 더 생기는 듯 했다. 오히려 건강한 남편은 바람이 불거나 춥거나 하면 엄살을 피우는데 나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힘들어도 내 인생은 내것이고, 극복하고 못 하는 것 또한 내 삶인 것처럼, 늘 그래왔듯 춘천의 단풍을 즐기고, 완주후엔 춘천의 명물 닭갈비와 막걸리를 마시면서 오늘의 피로를 날리면 되는 것이다. 전혀 특별하지도 않은 연중행사일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오랜만에 남편과 동반주를 한다. 잠시 힘들어서 당신 먼저가요 했지만 여전히 무딘 당신은 눈만 꿈뻑거리더니, 속도를 늦춘다. 
“제 얼마 안 남았다” “가서 쉬자” “고맙다, 내 다리야” “고맙다, 조금만 힘을 내게해다오”
아까부터 계속해서 머릿속으로 외운 주문이다. 남편도 힘든지 말이 없어졌다. 그래도 사진을 찍는 곳에선 전혀 힘들지 않은 표정으로 멋지게 포즈도 취해본다. 

드디어 골인이다!! 눈물이 난다. 
잠시 콧등이 시큰거려 눈물이 보일까봐 얼른 남편을 부둥켜 안았다. 남편도 내가 장하고, 또 독하다면서 꼬옥 안아준다. 이럴때 보면 남의 편이 아닌 내편인듯하다. 

내년에도 운전이 힘들다는 남편을 구슬려 나는 춘천에 올 것이다.
삼악산의 단풍과 의암호와 춘천호의 단풍과 달림이들이 만든 인간단풍속에서 나 또한 한 잎 단풍이 되어 나를 태울 것이다. 
내년엔 제발 병이 다 나아서 멋지게, 힘차게 골인해야지. 
그래서 재작년에 그랬듯 남편의 기록을 가볍게 넘어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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