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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눔과 사랑이 움 트는 가을의 전설
| 정희순 | 2016.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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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어어~"
"빨리 구급차 불러야겠는데요!"
"쥐! 쥐 난 거 같은데?"
"아아~ 오른 쪽, 오른 쪽이요!"
"가만히 힘 빼고 계세요!"
"아아~ 아퍼요!"
"다리를 쭉 펴세요! 조금만 참고 펴고 있어야 합니다"
"구급차 안 탄답니다"
"몇 번째예요?"
"이번이 아홉 번쨉니다"
"그럼 기권 못하겠네요? 내년에 명예의 전당에 오를 텐데~"
"맞아요! 절대 기권 안 해요!"
"무리해서 뛰면 안되지만 살살 걷듯이 뛰어 보세요"
"아이구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하프 반환점을 돌면서 시계를 보았습니다.
생각보다 엄청 빨리(?) 달렸습니다.
그대로 페이스만 유지할 수 있다면 제한 시간 내에 골인이 가능해질 것 같습니다.
아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기도 했지만 중간 중간 말을 걸어 농담도 하면서 나름 달리기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젊은 군인들이 대거 출전했습니다.
언젠가 [강한 육군]이란 글씨를 티셔츠에 새기고 뛰던 모습이 생각 나서, 
힘들어하는 젊은이들에게 '육군 화이팅!'하면서 용기를 불어 넣어 줍니다. 
응원을 해 주는데 오히려 제가 힘이 납니다. 

"아미(Army)?"
"네?"
"현역인가?"
"네! 그렇습니다"
"장굔가?"
"네! 중위입니다"
"ROTC?"
"넵! ROTC입니다"
"몇 기?"
"53기입니다"
"그쪽 아가씨도 장교?"
"네! 그렇습니다"
"와아~ 대단하네~"
"아닙니다"
"소대원들이 좋아하겠네?"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짧은 머리에 뛰는 모습이 상큼하기만 합니다.
아무리 봐도 군인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하긴 티셔츠에 Army라고 쓰여있습니다.
괜히 말을 걸어봅니다.
역시 예상한대로 장교들이었습니다.
여군 장교도 있습니다. 
대학을 갓 졸업한 소위랍니다.
 
페이스 조절한다면서 천천히 뛰고 있는데 그들과 함께 뛰면서 덩달아 속도가 빨라집니다.

‘이러면 안 되는데?’

그런데 힘에 부치지도 않고 은근히 달려지는 겁니다.
역시 누군가를 돕거나 응원하면 힘이 솟는 것 같습니다.
하긴 까마득한 후배들과 달리면서 '뒤쳐지면 안 된다'는 내면의 용기가 움 솟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괜히 이것저것 아는 척을 해 봅니다.
소대장이 마라톤을 하면 그 소대원들은 한편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더군다나 여자 소대장이라면 소대원들도 저절로 힘이 날 것이란 생각입니다.
 
'소대원들이 좋아하겠는데?'
'소대장이 힘이 좋으면 골 때리는 거지~'*^-^*
 
옆에서 누군가 맞장구를 치고 들어옵니다.
달리면서 한바탕 웃음보가 터집니다.
사실 강한 소대장은 힘에 부치는 소대원들 입장에서는 마냥 좋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춘천 인근 부대에서 장교들은 물론이고 병사들까지 대거 출동했습니다.
마라톤만큼 체력단련에 좋은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지휘관 이하 나이 든 하사관들도 대거 참석했답니다.
엉겁결에 동반 주를 하다 보니 생각보다 빨리 뛰게 되었습니다.
자식 같은 젊은이들과 함께 뛰니 은근히 자부심과 함께 힘이 더 생긴 것 같습니다.

힘들게 마의 30km를 눈 앞에 두고 어떤 사람이 아스팔트 위에 또 쓰러져 있는 것이 보입니다.
다리에 쥐가 난 모양입니다.
통증으로 힘들어 하는 사람을 두고 조금이라도 빨리 달리려고 내 달려 가는 것은 아녀 보입니다.
저마다 힘들어 쩔쩔 매다 보니 쳐다 만 보고 모두 그냥 지나칩니다.
구급차가 오더라도 그 때까지는 누군가 딴딴하게 뭉친 다리를 펴 주어야 합니다.
이미 달려 붙어 다리를 주물러 주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영화 [말아톤]에도 출연했던 잘 알려진 사람입니다.*^-^*
함께 두 다리를 배에 대고 힘 있게 일자로 펴서 누르면서 종아리를 주물러 줍니다.

머리 속에서 양면의 생각이 맴돕니다.
'조금이라도 빨리 가야 한다'는 생각과 '이 사람을 도와서 회복시켜 같이 달려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결국 같이 달리기로 마음이 잡혔습니다.
어차피 조금 빨리 달린다고 해서 입상 권에는 물론이고, 시간을 무지 많이 단축할 수도 없습니다.
차라리 '덩달아 쉰다'는 개념으로 2~30분은 그냥 소비했습니다.

이미 앞서 24km지점에서도 쥐가 나 쓰러진 한 사람을 회복시켜 준 상황이라 줄잡아 4~50분은 허비 했습니다.
천천히 일어나 한발자국씩 발을 떼는 모습에 안도의 숨이 내 쉬어집니다.
구급차가 오기 전에 그 사람이 일어 설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가을의 전설]에 열 번을 참여하면 명예의 전당에 오릅니다.
부상 당한 사람의 생각은 내년에 한번 더 참여하면 명예의 전당에 오를 생각뿐인 것 같습니다.
그래도 다행입니다.

힘들기는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오랜만에 달리는데도 힘에 부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쁜한 컨디션이 느껴집니다.
스스로도 좋은 일을 했다는 생각에 즐겁기만 합니다.

빗줄기가 생각보다 굵어지며 멈출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달리지 않는다면 추운 날씨입니다.
[가을의 전설]은 저도 여덟 번째입니다.
[가을의 전설]은 이래저래 에피소드와 행복의 끄나풀입니다.

달리기를 하면서 1m에 1원씩 소아암 어린이를 위한 기부도 합니다.
직접 뛰는 저는 물론이고, 함께 응원하고픈 사람들도 동참합니다.
한 동안 부상으로 달리기를 중단했었는데 다시 뛸 수 있어서 무엇보다 행복이 넘칩니다.
[소아암 어린이 돕기]도 계속할 수 있어 더 행복합니다.
벌써 내년이 기다려집니다.
사실은 명예의 전당에 오르게 되는 후년이 더 기다려집니다.

남을 도와가며 행복한 달리기를 마치고 골인 점에서 아내의 환영을 받습니다.
하루 종일 걱정하며 기다려준 아내가 고맙기만 합니다.
그리고 생각보다 힘들지 않게 골인한 것이 무엇보다 자랑스럽습니다.
달리면서 함께 정을 나눈 [가을의 전설]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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