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만남의광장 > 참가후기
| 죽기 전에 하고싶은 것 중 하나
| 김재천 | 2016.11.01
| 1957    

어린 시절 나는 몸이 재빨라서 어른들로부터 홍길동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하였다.
동네 할머니들께서는 "야는 몸이 날래! 홍길동이 처럼 동에 번쩍 서에 버쩍거려. 아까 저어기 있었는데 언제 여기에 왔노?."하시며 심부름을 자주 시키시곤 하였다.
초등학교시절부터 군대에서까지 달리는 것으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 달리기에는 자신이 있었다. 특별히 운동을 하거나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뜀박질 실력은 타고 났다고 생각하였다. 성인이 된 후에는 등산에 취미를 붙여 틈만 나면 산을 헤집고 다녔었다. 

내 나이 54살이 되던 2013년 여름. 산악회 활동하는 친구따라 지리산으로 떠났다. 젊을 때 자주 가던 산이라 설레임을 안고 노고단을 향했다. 성삼재에서 노고단 정상을 갔다 화엄사로 내려 오는 코스였다. 노고단에서 점심을 먹고 화엄사 계곡을 따라 내려 왔는데 중간에 무릅이 욱신거리는 것을 느끼고 쉬엄 쉬엄 하산하였다.
부산에 도착하니 무릅이 너무 아파 걸을 때마다 무릅에 통증이 왔다. 다음 날 정형외과를 가니 운동부족으로 근육이 약해졌는데 무리해서 그런거라고 하며 뼈주사와 함께 운동처방을 해 주었다. 
40대 초반에 담배를 끊으며 건강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것과 멀리하며 지냈는데, 체력은 좋은 상태가 아니었던가 보다. 아마 결혼 후 20년 동안 운동하지 않은 것이 원인이리라. 
그날부터  학교 운동장을 빠른 걸음으로 40분 정도 걷는 운동과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하며 근육을 키우는 운동을 하였다. 그 해 가을 한국방송통신대 대학 동문회에서 'I LOVE 방송대 마라톤축제'를 개최한다 하여  'I LOVE 방송대 마라톤축제'에 참가 신청하였다. 내심 걱정은 되었지만 일단 아주 천천히 뛰었다. 5km정도는 무리없이 가겠지 했는데 반환점을 돌아 7Km까지 오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곳에서 발생하였다. 심장이 터질 것같은 느낌에 달리는 것을 일단 멈추고 걷다 뛰기를 거듭한 끝에 완주를 하였다. 1시간 4분이라는 기록은 무척 자랑스러운 성적표였다. 3개월여 만에 마라톤을 할 수 있다니!! 정말 가슴이 벅차 오르는 기쁨을 맛보았다. 이것이 나에게 마라톤 입문의 길을 열어주었다.
 
40대 중반에 김해도서관 영어교실에서 '죽기 전에 해야 할 100가지'를 적는 수업이 있었다.
나도 꼭 하고 싶은 것들을 적었었는데 지금 생각나는 것은 겨우10손가락에 꼽을 정도만 생각난다. 그 중 하나가 '마라톤 풀코스 완주' 였다.
그때 '마라톤 풀코스 완주'는 정말 꿈같은 일이었다.'죽을 때까지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느껴졌다. 저녁이면 가끔 운동삼아 김해 해반천을 달렸었는데, 얼마 못가 숨이 차고 다리가 모여 걷고 말았었다. 그럴 때마다 젊은 시절 남들보다 우월한 실력으로 마음껏 달리던 추억이 슬라이드를 보듯이 생생히 되살아 났다. 
 'I LOVE 방송대 마라톤축제' 후 11월에 다대포에서 열린 '부산 마라톤'에서 10Km를 달리며, 한 달에 한 번씩 꾸준히 달리다 보니 지금은 '하프'를 달릴 정도의 체력을 유지하게 되었다. 
이렇게 대회를 참가하다 보니 어느 순간 기록갱신에 마음이 가게 되었는데, 그럴 때마다 스스로에게 "건강을 위해서 달리는 거니까 기록은 생각하지 말자."며 굳게 다짐하였다. 가족들의 걱정 또한 그것이었으니까. 그러나 같은 또래들과 나보다 연상인 분들이 풀코스를 달리는 것을 보면서 얼마나 부러워 했던가! 

2016년 여름 드디어 나도 '풀코스'에 도전하기로 하였다. 숙고 끝에 '춘천 마라톤'을 선택하였다. 이유는 '죽기 전에 해 보고 싶은 일'에 도전하는 것을 동네 돌듯이 하기는 싫었다. 
'처음 뛰는 풀코스'를 기억에 남는 곳에서 추억으로 남기고 싶었다. 신청하고나서 서둘러 9월 19일 부산 보훈병원에서 '위 선종 제거 시술'을 받았다. 생애 첫 풀코스도전인 '춘천 마라톤'을 가벼운 마음으로 뛰기 위해서였다. 6일간 입원 후 퇴원하였는데, 결과 보는 날 담당의 선생이 '조직검사 결과도 좋고 몸 상태도 좋다.고 하였다. 이렇게 하나씩 준비해 나갔다. 한 달에 한 번 마라톤 하는 것 말고는 하는 운동이 없었던지라, 대회일 보름 전부터 집 주위를 일주일에 한, 두번씩 뛰었다. 40분에서 1시간 정도를 뛰었는데 기분만으로는 몸이 가벼워지는 것같은 느낌을 받았다. 
대회 이틀전 부산에서 인천으로 차를 몰았다. 다음 날 서울에 들러 일을 본 후 점심때 춘천으로 방향을 잡았다. 춘천으로 가는 길은 단풍으로 물들어 가을 향기를 뿜어 내고 있었다. 가을향기에 취하며 가다보니 어느 순간 춘천호가 나를 반긴다. 호수 주위의 풍경은 유럽의 가을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맑은 호수에 떠있는 구름, 호수 주변의 예쁜 집들, 청명한 하늘에 싱그런 바람까지 낮선 여행객에게 최상의 환대를 하는 듯하다. 집결지로 가는 길은 대회 준비가 한창이었다. 집결지 근처 민박집에 짐을 풀고 집결지 확인에 나섰다. 집결지도 확인하고 저녁과 아침 준비도 하기 위해서 였다. 집결지에도 여러 사람들이 분주히 대회준비를 하고 있었다.
집결지 근처에서는 '풍물 5일장'이 서고 있어서 한 시간 정도 구경하고 '무장아찌'를 사서 민박집으로 돌아왔다. 마트에서 산 '햇반'과 '즉석 된장국'을 먹으며 '대회안내 책자'를 보며 숙지사항과 '코스맵'을 보았다. 드디어 내일이 내 인생에 한 페이지의 추억과 또 한 번의 전환점을 찍을 터닝포인트가 될 것이다.
 
5시에 눈을 떴다. 아침을 챙겨 먹고 집결지로 내려 갔다. 집결지 근처에 주차한 후 '쥐마클' 부스를 찾았다. 처음 보는 친구들이 반갑게 맞아 주었다. 요즘 같은 세상에 '60년생 쥐띠'라는 단 하나의 연결고리로 죽마고우 같은 느낌을 향유할 수 있다니! 전국에서 도착하는 친구들이 모두 반갑게 서로 인사한다. 마라톤이라는 하나의 공통점이 이들을 공동체로 묶어 놓았다. 얼마나 보기 좋은가? 훈훈한 인정속에 머물다 출발지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첫 참가라 'G'그룹에 배정되었다. '엘리트' 선수들의 출발을 시작으로 순서대로 출발 하였다. 나는 5시간을 목표로 하였기에 5시간 페이스 메이커 곁에서 준비하였다. 
드디어 출발!
많은 인파로 인하여 천천히 달리어 나갔다. 5Km를 지나니 몸이 풀리기 시작하였다. 책자에서 익힌대로 오르막은 몸과 고개를 조금 앞으로 젖히고 짧은 보폭으로 올라가고 내리막은 몸에 힘을 빼고 다리가 가는데로 맏겼다. 10Km를 지나니 내 앞에 'E그룹 4시간 40분 페메'가 달리고 있어 20Km 가까이 까지 함께 달렸다. 처음 뛰는 풀코스라 후반 체력에 신경을 써면서 6분대로 달렸다. 하프지점을 통과하면서 아직 체력이 남아 있다는 것을 느끼며 주변의 주자들과 아름다운 호수를 가끔 보면서 달렸다. 주위에는 건장한 마라토너들과 흰머리가 성성한 주자와 학생들, 휠체어에 아들을 태우고 달리는 아버지, 몸이 다소 뚱뚱해 보이는 여성 마라토너, 단체유니폼으로 무장한 무리들과 나 모두가 춘천호반의 가을 축제와 어우러져가고 있었다. 30km를 지나니 다리에 경련이 나서 보폭을 줄이며 조금 천천히 달렸다. 가끔 지나가는 구급차의 사이렌과 종아리를 마사지하며 누워있는 사람들이 내 시야를 스친다. 35Km를 지날 때 비가 내려 시원하였다. 책자에서는 한계점이라고, 심적으로 힘든 구간이라고 하였지만 나는 괜찮았다. 호흡도 괜찮았고 포폭이 줄어든 것 외에는 별로 힘들지 않았다. 거리의 표지판이 1Km씩 줄어드는 것을 보면서 천천히 달렸다. 42Km를 지나 골인점이 가까워지니 응원하는 주자들의 가족들이 보였다. 그 속에서 나도 아내의 얼굴을 찾으며 군중들의 얼굴을 살피며 뛰는데 골인점 근처에서 아내가 손짓하며 나를 응원하고 있었다. 얼마나 반가웠는지. 아내는 토요일 속리산에서 세미나를 하고 아침에 춘천으로 온 것이다. 골인점을 통과하고나니 드디어 '해냈다'는 기쁨이 밀려왔다. 힘들었지만 쉬지 않고 4시간 50분을 달린 것이다.
 
죽기 전에 하고 싶었던 것 중 하나! 이제 이루었다. 15여년 전에 꿈꾸던, 도저히 죽기 전에 할 수 없을 것 같던 그 일을 춘천에서 해내었다!! 







※ 댓글쓰기는 회원 로그인후 가능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