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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춘마, “명예의 전당 입성” 그 짜릿한 희열과 그리움의 무대
| 이지훈 | 2016.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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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수기를 써본 경험도 글을 장황하게 표현해본적도 없어
글솜씨는 많이 부족하지만 이번 후기를 작성하면서 개인적으로 춘마와 함께한 10년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던 거 같습니다.



=== 2016년 춘마, “명예의 전당 입성” 그 짜릿한 희열과 그리움의 무대 ===



학창 시절 달리기 실력은 매번 꼴찌를 면하기 어려웠고 소질도 없었기에 지금껏 달리기와는 별개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러던 나는 2007년 만28세의 나이에 무모하게 춘천마라톤에 첫풀코스 도전장을 내밀었고
올해 10회 연속 출전으로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게 되었다.

올해 춘마는 나에게 있어
그 어느해보다 가슴벅찬 희열감과 함께 가슴아린 슬픔이 함께한 만감이 교차된 희노애락의 무대였다.

2007년 우연한 기회에 수원에서 개최한 경기마라톤 10Km코스에 참가하며 마라톤에 입문한 후
수 많은 대회에 참가하였지만 대회 전 특별한 훈련이나 노력에 시간을 할애 하지 않았다.
기록에 대한 큰 욕심이 없었기도 했지만 그저 취미로 달릴때의 즐거움과 완주의 성취감 정도로 만족하며 마라톤의 끈을 이어가고만 있었다.

그러다보니 해가 지나면서 풀코스 참가 횟수는 제법 많아졌지만 기록은 늘 저조하였다. 
2007년 춘마 첫 풀코스를 5:05에 완주하고 이후 5년간 계속 5시간 초반대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 이후로는 신체 조건이 어느 정도 마라톤에 최적화가 되었는지... 운이 좋았는지...
하여간 춘마 6회째부터의 기록은 어느덧 4시간 초반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2012년 말 여동생은 30대 중반이라는 젊은 나이에 구강암 진단을 받았고 안타깝게도 대학병원에서 두 번의 오진으로 시간이 많이 경과되 4기까지 이르게 된다.
술 담배도 모르고 착하게만 살아왔는데 왜 이런 병이 왔을까. 뭐가 문제였을까?
국내 메이져 병원에서의 첫 수술후 다시 직장에 복직하고 육아와 병행하면서 경과가 좋아보였으나
6개월 후 재발에 재발을 거듭하며 힘든 방사선과 항암치료까지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어떻게든 살려봐야 겠다는 심정으로 나는 전국을 수소문하며 자연치유나 명의란 사람들을 찾아다녔다.

아프기 전까지 오빠가 마라톤을 한다고 늘 대단하다며 응원해주고 직장 동료들에게 자랑도 하던 동생이었다.
이렇게 해마다 응원해주고 격려해주던 동생은 15년에 들어서면서 점차 상태가 악화되어 장기간 병원 신세를 지게되었고 나는 힘들게 투병 중이던 동생을 위해 뭐든지 해보고 싶었다.

“ 죽을 死 ", “ 4시간의 장벽 " 을 허물어보자!

 미치도록 동생을 살리고 싶다!

15년 춘마의 목표를 세웠고 마라톤입문 9년만에 처음으로 훈련 계획을 세웠다.

주당 50km씩 두 달간 누적거리 400km 목표를 설정하여 작년 춘마에 3:51:56 결승선을 통과하였다. 
첫 Sub-4였다.
동생을 위해 달렸던 목표 달성의 기쁨과 성취감도 잠시, 동생은 한 동안 별 차도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이번 계기로 동생이 꼭 완치되었으면 좋겠다.
하루에 수백번씩 낫게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해 겨울 왕복 10시간 거리의 대구 팔공산 정상에 가서 108배 절을 하고 내려오기도 했다.

내 노력과 정성이 부족했을까?
그 해 추운 겨울 동생은 잠시 암과의 힘겨운 사투를 잘 버티는 듯 했지만
평소 목련꽃을 참 좋아하던 동생은 올해 봄 목련꽃 피는 4월 머나먼 하늘 나라로 떠나고 말았다.

너무나 안타깝고 가슴 아픈 심정에 한동안 마음을 추스릴 수 없었다.
여러 달을 방황도 하며 멍하게 보낸 시간들이 지나 어느덧 올해 춘마 접수가 시작되었다는 알림을 받고나서 문득 작년의 기억들이 아련하게 떠올랐다.

그래 다시 도전해보자! 
불가능할거라 생각했지만 일단 3:40분이라는 도전적인 목표 기록을 입력하며 춘마 접수를 마쳤다.

그래! 지금껏 나를 응원해주던 동생은 16년 춘마에는 곁에 없지만 하늘나라에서 응원해 줄 너를 위해 다시 한번 달려보자. 

무더위가 조금씩 수그러들던 8월 말부터 나는 러닝앱 프로그램을 셋팅하여 주당 누적거리 70km 목표를 설정하고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매일 10km 이상씩 달렸으며, 
장거리 훈련으로는 주 1회는 직장인 서울 구로에서 수원까지 퇴근길을 뛰어서 귀가하였다.
대회 전날까지 총 누적거리 553km를 달성했다.

드디어 10월 23일 춘마 당일이다.
새벽 5시10분 지하철 첫차에 몸을 싣고 용산역을 향했다.
어제 잠을 설친터라 눈을 감고 가볍게 잠을 청하다보니 어느 덧 용산역.
수많은 마라톤 인파들을 따라 ITX 열차에 탑승하여 약 1시간30분 가량을 지나 춘천역에 도착했다.

가져온 복장으로 환복하고 간식으로 가볍게 배를 채운후
가슴에 배번을 달고 준비를 마쳤다.

오늘은 날씨가 정말 좋다. 10년동안 참가한 춘마 중 뛰기에 가장 좋은 날씨였다.
게다가 컨디션도 나쁘지 않다. 뭔가 느낌이 좋다.

주위를 둘러보며 가볍게 몸을 풀고나니 어느 덧 출발점에 서 있었다.
스타트를 알리는 총성과 함께 C조에 배정받은 나는 배동성 사회자의 구호에 맞춰 출발선을 힘차게 달려나갔다.

1km를 지나 페이스를 슬쩍 확인해보니 4분20초? 너무 빠른 듯한 느낌이다.
초반 오버페이스가 나중을 망친다는 말을 늘 들어왔기에 살짝 긴장감이 들었지만
그대로 10km까지 페이스를 유지해보니 전혀 힘이 들지 않고 컨디션도 좋았다.

작년보다 단풍은 아직 덜 찾아온 느낌이었지만 아름다운 북한강의 경치를 만끽하며 하프구간을 1시간 45분에 지나쳤다.
올해는 유독 에너지가 넘쳐나는 느낌이다. 이대로만 유지한다면 3:40분 목표기록도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구간마다 자원봉사자들이 준비해준 물 한잔씩을 마셔가며 힘찬 발걸음을 내딛다보니 어느덧 춘천댐에 다다르고 있었다.
춘마의 최대고비 긴 오르막이 주자들의 발목을 하나 둘 잡고있다. 나도 호흡이 거칠어지며 조금씩 페이스가 쳐져가고 있었지만 숨을 한번 크게 들어마셨다 내쉬며 호흡을 고른 후 조금씩 힘을 내어 발걸음을 재촉했다.

30km를 지나며 허벅지와 장단지가 묵직해짐을 느껴온다.
아직 체력이 남아 있음에 안도감을 느끼며 정신력과의 싸움을 시작하고 있었다.
소양교를 달리며 거리 봉사자들의 응원 함성 소리에 힘을 내며 달렸다.

어느 덧 40km를 통과, 남은 거리는 이제 2.195km이다.
기록을 보니 3시간 22분을 지나고 있었다. 역대 최고 기록이었다.
이대로라면 목표기록인 40분대가 아닌 30분대에도 가능하겠는데? 순간 묘한 짜릿한 흥분감이 내 몸을 감싸고 있었다.

직선주로의 마지막 남은 거리는 끝이 없어 보였지만 힘차게 한발 한발 다가가니 저 멀리 결승지점이 보인다.
결승점 주변에 많은 인파들의 환호성치는 모습들이 스쳐지나간다.

갑자기 작년까지 응원해주던 동생 생각에 가슴이 울컥해지며 뜨거운 눈물이 앞을 가린다.
좋은 기록으로 여기까지 무사히 잘 뛰도록 도와준게 동생이었다.

나는 두손을 번쩍 들어 올리고 큰 소리로 동생의 이름을 부르며 3시간 32분의 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하였다.

기록 달성이라는 성취감과 동시에 그리운 동생 생각에 붉어진 눈시울로 멍하게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다.

2016년 춘마는
명예의 전당 입성, 개인 최고기록 달성이라는  희열과 성취감
지금까지 응원해주던 너무나 보고 싶은 내 동생을 하늘 나라로 보낸 상실과 그리움의 만감이 교차한 정말 잊을 수 없는 무대였다.

70주년을 맞이한 춘천마라톤
나도 70세까지 춘마와 함께 할 것을 기약하며 내년 춘마를 일찌 감치 기다려본다.

C조 3433 이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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