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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가후기] 고통을 이겨낸 후 환희
| 양재만 | 2016.11.10
| 1969    

처음 마라톤을 시작했던 나이 58세. 
그때는 정말 무식하게 ‘그냥 뛰면 되지.’라는 생각으로 동네에서 두 번 연습 삼아 하프를 뛴 후 마지막으로 45km를 뛰고, 2007년 서울국제마라톤 대회에 출전했었다. 그런데 첫 기록이 3시간 31분 33초, 마라톤 초보가 무식하게 시작한 것 치고는 꽤 괜찮은 성적이었다. ‘하아, 이 정도라면 나 아직 쓸 만 하구만! 그래 좋았어! 기록 단축해보자!’라는 목표가 생겼고, 뿌듯함과 자신감으로 나의 마라톤 인생이 이렇게 시작되었다. 

정년퇴임한 후 사회에 적응 하려고 하니 속상하고, 힘든 시간의 연속이었다. 현직에 있을 때보다 기력도 없는 것 같고, 내가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아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런 시련을 극복하고 밝게 살아보려고 골프, 산행, 하이킹 등 다양한 스포츠를 해봤지만 하면서도 즐기지 못했었고, 딱히 나에게 맞는 운동이 아닌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었다. 그런데 마라톤은 시작하자마자 남들이 부러워하는 성적을 내니 이 얼마나 뿌듯하고 기쁘지 아니한가! 마라톤은 나의 운명이고, 나에게 딱 맞는 너무나 매력적인 것으로 보였다. 마라톤 동호회 활동을 시작해서 회원들과 일주일에 3번 씩 모여 연습하고, 개인적으로 매일 1시간 이상 달리고, 식사 시간에는 음식 조절하고, 다음 경기 때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마라톤과 함께 했다. 이렇게 피와 땀의 노력으로 만든 두 번째(60세) 기록이 3시간 23분 02초로 단축된 것이다. “그래! 이왕 시작한 것 메달 100개는 만들어보자!”라고 더 큰 목표가 생겼다.

그렇게 100번만 하자고 했던 마라톤이 벌써 104번째(2016년 춘천 국제 마라톤 대회)가 되었다.

그런데 여기 까지 오면서 어찌 기쁜 일만 있었겠는가! 기록이 잘 나온다 싶더니 80회째부터 점점 기록이 떨어지고 있었다. ‘그래! 내 나이 어디 가겠나. 내가 행복하면 그걸로 된 것이지.’ 기록에 대한 미련이 계속 남은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래도 난 마라톤이 좋았다. 그리고 ‘또 열심히 연습하면 기록쯤이야 단축되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꾸준히 마라톤과 함께 하던 어느 날 결정적인 사고가 생겼다.

때는 2015년 5월 1일, 한강에서 싸이클을 타자는 친구의 제안을 받고, 매일 타던 내 자전거보다 기동력이 좋은 아들의 자전거를 빌려 약속 장소에 나갔다. 조작하는 데에 좀 서툴고 어색했었는데 ‘이 까짓거 못 타겠냐.’라는 생각으로 친구들과 신나게 자전거 타기를 즐겼다. 그러다 돌발적으로 나타난 코너를 돌다가 자전거 속도에 비해 내가 반사적으로 브레이크를 누르는 판단의 시간이 너무 짧은 탓에 그만 자전거는 저쪽에 내동댕이 쳐지고, 나는 바닥에 그만… 다리에서는 피가 철철 나고 있었다. 같이 있던 친구들도 놀라 내 쪽으로 와보니 상황이 심상치가 않아 구급차를 불러 근처 병원으로 옮겨졌다. 그 상황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기억을 잃었으리라. 

그 사고로 우측 무릎 인대와 근육 파열로 수술을 하고 의사도 더 이상 마라톤 하기는 무리일 것 같다고 했다.

‘정말 열심히 연습했는데, 정말 잘 달릴 수 있는데, 메달 100개가 코앞인데… 아… 내가 왜 싸이클을 했을까’ 많은 생각이 들었고, 후회가 됐다. 원래 후회하는 성격이 아닌데도 2015년 춘천마라톤 대회를 목전에 두고 있었던 터라 춘천 대회에 참가를 못할 것을 생각하니 왜 그렇게 마음이 아프고 슬펐는지… 그리고 내가 정말 앞으로 다시 마라톤을 하지 못하게 될까봐 마음이 정말 무겁고 힘들었었다.

하지만 내가 누구인가! 마라톤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사람, 마라톤이 좋아 아파도 뛸 수밖에 없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나다!

주변에서는 건강도 챙기지 않고 뛴다며 그만하라고 만류해도 난 마라톤이 좋다. 그저 좋다.
아무 생각 없이 달리고 또 달리고 그러다보면 어느덧 목표 지점에 도달해 있을 때의 그 희열과 환희! 그들은 그것을 모르니 그렇게 말할 것이리라. 아내와 아들과 딸과 사위와 며느리까지 함께 마라톤을 뛰면 더없이 좋겠지만 그럴 형편이 못 된다. 아내는 나이가 들어서 인지 발이 자꾸 붓고 매일 아프다고 하고, 아들은 회사 생활에 치여 뭐가 그리 바쁜지 자기 살기 바쁘고, 딸은 손자 키우느라 정신이 없고, 사위도 살 좀 뺄 겸 같이 마라톤 하자고 하면, 야근에 주말근무에 맨날 뭐가 그리 바쁘단다. 며느리는 아기를 가진지 8개월째 들어서고 있다. 이러니 내가 이들 몫까지 다 해야 하지 않겠는가! 내 임무가 더 막중하다! 이들 몫까지 뛰려면 말이다. 그리고 2015년 춘천마라톤을 뛰지 못한 것까지 만회하려면 말이다!

그래서 다리가 어느 정도 회복하자마자 또 뛰었다. 평소보다 더 이를 악물고 2016년 춘천 마라톤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연습했다. 다시 음식 조절을 하고, 하루도 빠짐없이 뛰고 또 뛰었다. 하지만 무릎에서는 자꾸 통증이 온다. 걷기만 해도 아프다. 의사가 무리하지 말라고 했는데도 내가 이렇게 밀어붙이고 있으니 통증이 오는 게 당연하기도 하다. 그래도 파스를 붙이고 약 먹어가면서라도 난 연습을 해야 한다! 더 이상 무릎 부상은 내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이번 대회를 뛰어야 이 한이 풀리리라!

1년을 꼬박 준비하며 기다렸다. 드디어 오늘이다! 2016년 춘천마라톤이 열리는 날!

평소에는 마라톤 좀 하지 말라고 잔소리 하던 아내가 당일에는 힘내라고 점심에 우동 한 그릇을 사준다고 하더니, 갑자기 딸에게 연락이 와서 식사를 같이하자고 한다. 딸과 사위와 손주 녀석까지 와서 마라톤 잘 뛰고 오시라고, 아픈데 무리하지 말고 완주 목표로만 하고 쉬엄쉬엄 뛰고 오시라고 걱정 섞인 응원을 해준다. 오늘이 이사날인 아들과 며느리는 전날 파이팅 메시지를 미리 보내왔다. 이렇게 응원해주는 이들이 있으니 내 마음이 한결 가볍다.

자! 그래 이제 출발해 볼까!

춘천에 딱 도착하자마자 따스한 햇살이 나를 반겨준다. 춘천의 풍경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다웠다. 오늘 느낌이 좋다! 이런 느낌이라면 오늘도 잘 달릴 수 있으리라!

마라톤 출발점에 서니 감회가 새롭다. 시작이 반이니 여기 선 것은 이제 반은 해낸 것이다. 이제 반만 해내면 된다. 출발소리와 함께 많은 마라토너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달리기 시작했다. 다리야~ 도와줘~

그러나 출발하는 순간부터 좌측 무릎에서 고관절까지 통증이 왔다. ‘아! 벌써 이러면 어쩌니.’ 고통스러웠다. 솔직히 무슨 정신으로 달렸는지 생각도 나지 않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도 않았다. 뛰면서 머리가 새 하얘 졌다. 그런데 난 계속 그냥 뛰었다. 그저 완주만 하자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하프 지점(2시간 7분 통과)에서 갑자기 문득 남은 하프가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포기가 없다! 고통은 그냥 이 악물고 참았다. 후반하프는 1km 단위로, 500m 이상은 속보로 가고 잔여 거리는 혼신을 다하여 달리고, 다시 똑같이 반복했다. ‘그래! 이렇게 달리면 될 것도 같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라고, 36km 지점에서 비가 오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정말 죽을 맛”이었다. 정말 울고 싶었다. 주저앉고 그냥 다 포기하고 싶었다. 그런데 내 생각과 달리 다리는 말을 듣지 않았지만 나는 계속 뛰고 있었다. 이제 6km 정도만 가면 되는데, 여기서 포기하면 억울할 것 같기도 했다. 내가 얼마나 이 고통을 참고 여기까지 왔으며, 이 시간을 얼마나 기다려 왔는데 여기서 포기하면 그동안의 노력이 다 물거품인데… 조금만 더 참자. 조금만… 조금만… 
  
그런데 갑자기 내 눈에 뭔가 들어왔다. 아마 거의 다 끝났다는 안도로 인해 이것 저것 내 눈에 보이는 것들이 있었으리라! 저쪽에서 인터뷰를 한단다! 조선TV 방송국에서 준비한 ‘주로에 한마디 합시다’라는 장소가 마련되어 있었다. 그래도 내가 이 아픔을 견디고 달리는데 뭐라고 한마디 해야 겠다 생각하고,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도 안나는 인터뷰를 했다. 그때 생각을 하면 지금도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

드디어 결승선이 내 눈 앞에 보이기 시작했다. 고지가 저긴데 내가 저기만 골인하면 되는데…

결국 4시간 45분 45초의 기록으로 완주를 했다. 남들은 “다리가 그렇게 아픈데 왜 그렇게 뛰냐.”며 뭐라고도 했다. 그러나 나는 너무나 뿌듯했고, 기쁨에 감정이 벅차올랐다. 

그래! 이거지! 내가 이 맛에 마라톤 하는 거지!
후회도 없다. 작년의 아픔도 지금의 고통도 없다. 슬픔도 없다. 그저 기쁨만 있다.
난 온몸으로 체험했다! 고통을 이겨낸 후 환희를!!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 현실에서 고통이 밀려온다. 
잊고 있던 그 아픔의 고통. 잠시 미뤄뒀던 그 고통.
자! 이제 내 몸 좀 추스려 볼까?^^

나에게 또 다른 목표가 생겼기 때문이다.
“2017년 춘천 국제 마라톤 대회 명예의 전당 입성!”
내년에 10번째로 도전하여 무사히 완주한 후 꼭 목표를 달성할 것이다!

내년에는 온전한 신체와 정신으로 뛰어 볼까! 자! 또 다시 시작이다! 얏호!


이름: 양재만       배번: 3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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