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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마 후기] 육아휴직 중 가장 소중했던 5시간 20분 20초
| 김성태 | 2016.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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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마 후기] 육아휴직 중 가장 소중했던 5시간 20분 20초


삼성 8년차 직장인으로 정신없이 인생을 달리고 달렸지만, 삶의 공허함은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았다. 결국 2016.4.4. 1년간 육아휴직을 내고 나와 가족을 위한 유의미한 삶의 자취를 남겨보기로 결심했다. 철인 3종 올림픽 코스를 완주했고, 각종 몸 짱 선발대회에 출전했다. 그리고 몸과 인생의 변화를 주제로 책도 한 권 집필했다. 그렇게 소위 말하는 ‘미친 열정’을 가지고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던 나에게 ROTC 선배의 문자가 하나 왔다.

“춘마에 함께 간다!”

생애 첫 풀코스 도전. 이 것 또한 나에게 주어지 새로운 기회라는 생각으로 ‘기어서라도 완주 하겠습니다’라는 답변과 함께 춘마 풀코스에 출사표를 던졌다. 

2016.10.23.
마라톤을 위해 모인 사람들의 열기는 갑자기 불어 닥친 매서운 바람보다 강했다. 그 곳에서 각자의 방법대로 레이스를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을 통해 삶의 다양성에 대해 잠시 생각할 수 있었다. 우리는 같은 출발선에 서지만 모두 다른 모습과 마음가짐 그리고 소망을 가지고 이 레이스에 참여한다는 사실을... 나 또한 ‘DD(Destination is Donation) Project’라는 1m10원 나눔의 뜻을 마라톤 풀코스 도전에 담았다. 나의 건강을 나눌 수 있는 감사의 마음을 공유하기 위해 나 홀로 진행하고 있는 나눔 프로젝트다.

드디어 출발. 혼자가 아닌 선배와 함께 하는 레이스라 힘이 되기도 했지만, 짐이 되면 안 된다는 생각에 부담도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5시간이라는 나름 충분한 목표를 설정했기 때문에 조급한 마음 따윈 버리고 ‘천천히 천천히’를 되새겼다.

1km를 6분 30초의 속도로 10km 구간을 무사히 통과하는 과정에서 만나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같은 페이스를 유지하며 20km 구간을 지나 드디어 하프지점에 도달했다. 경과 시간은 2시간 20분. 이 때 나는 속으로 5시간 내 완주가 쉽지 않겠다는 것을 예감했다. 그동안 5시간 이상의 완주 기록을 가진 사람들을 나름 속으로 비웃었던 내 자신이 한 없이 초라해지는 것을 느꼈고, 마라톤은 기록이 아닌 완주가 얼마나 값진 것인지 그 무게를 경험하기 시작했다.

20km 지점까지 자연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면, 20km 이후부터는 그런 여유는 전혀 없었다. 그리고 나는 함께 레이스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나의 정신력이 약해질수록 주변에서 부지런히 목표를 향해 달리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내 자신에게 용기를 주려고 했던 것 같다. 분명 나보다 힘들어 보이고, 나보다 못 뛸 것 같은데 나를 지나쳐 묵묵히 자신의 레이스를 하고 있는 분들에 대한 존경의 마음이 생겨났으며, 겉모습은 예측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지만 결코 확신할 수 있는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게 그렇게 30km 지점에 도착을 했다. 그런데 이 때부터 걱정했던 무릎 통증이 시작되었다. 함께 뛰는 선배와 조금씩 조금씩 멀어지기 시작했지만, 보폭을 넓혀서 뛰려고 하면 무릎에 통증이 견딜 수 없을 만큼 전달되었기 때문에 걷는 듯 뛸 수밖에 없었다.

32km 지점에서 잠시 휴식했다. 경과 시간은 3시간 40분. 누군가는 레이스를 끝내고도 남을 시간이었지만, 나에겐 아직도 10.195km가 더 남았다. 이 때 나는 선배를 보내주기로 결심했다. 이번 레이스는 무조건 같이 결승선을 통과하자고 약속했지만, 선배의 5시간 완주를 지켜줘야 할 것만 같았다.

“선배님, 5시간 30분 안에는 무조건 들어갈테니 먼저 가세요!”

그렇게 진짜 나만의 레이스가 시작되었다. 남은 10km를 1km 당 10분의 속도로 달리면 5시간 30분 안에 완주가 가능하다고 판단한 나는 조금 여유를 되찾을 수 있었다. 삶에서 목표는 무엇일까? 사실 아직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목표의 유연성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맹목적인 결과를 향해 달린다면 결국 도착하기도 전에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다.

32km 이후부터는 주변의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이때부터는 오직 ‘나’ 하나만 보였고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말하는 진짜 마라톤을 경험하기 시작했다. 무릎의 통증은 점점 심해져만 갔다. 너무 힘들고 아파서 가로수를 붙잡고 스트레칭을 했지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그렇게 쉬는 사이 다른 선수들은 저 멀리 가 있었다. 그 어떤 행위도 도움이 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나는 고통과 함께 레이스를 마무리할 수밖에 없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고통의 깊이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나의 내면에 느껴지는 삶의 깨달음 또한 깊어지고 있음을 알았다. 결국 누구도 나의 레이스를 관여할 수 없다. 내 고통을 이기고 다리를 움직여 결승선에 다가가야 끝이 나는 거다.

드디어 마지막 1km 표지판이 보인다.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하늘 높이 올려본다. 마지막은 멋지게 뛰어보고 싶어 용기를 냈다. 하지만 2걸음 내딛고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도 남들에게 보여 지는 모습이 중요한 내 자신에 대한 미련함과 함께..

5시간 20분 20초.
나보다 30분 먼저 결승선을 통과한 선배가 사진기를 들고 그 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결승선에서 경험한 그 반가움, 그 기쁨, 그 감동, 그 대견함, 그 후련함 그리고 그 깨달음들.

아, 이래서 인생이 마라톤이구나!


- 김성태, 10069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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