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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천마라톤은 아내와 여행하는 날이다
| 류인복 | 2016.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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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천마라톤은 아내와 여행하는 날이다 
  출발이다. 그 동안 긴장했던 마음의 무게가 달려 나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가벼워진다. 달리기 전까지만 해도 부족한 연습과 많은 생각이 스치면서 완주할 수 있을까 불안했기 때문이다. 완주가 목표이니 편안한 마음으로 달리자고 되새기며 달린다.

  화창한 날씨는 아니지만 달리기엔 무리가 없다. 시작부터 오르막길이 나를 오라고 손짓한다. 피해 갈 수 없는 길이다. 웃지는 못해도 인상은 찌푸리지 말고 묵묵히 올라간다. 언덕길이 내겐 힘들다. 앞줄에서 출발했는데 1km를 달리자 선두 그룹이 보이질 않는다. 그들의 운동량이 존경스럽고 힘차게 달려가는 달림이 들이 멋지다.

  8년만의 달려보는 마라톤이다. 단축 마라톤이긴 하지만 그 동안 다른 취미생활을 한다고 달리기는 뒷전이었다. 우연히 동료들과 대화중 단풍놀이 이야기가 나왔을 때 예전 같으면 풀코스만 있는 대회였기에 지나쳤을 텐데, 단축코스도 신설한 것을 알고 춘천 마라톤사이트에서 한참을 망설였다. 준비하지 못한 달리기에 단풍놀이라는 구실로 춘천행을 밟는 것은 마치 시험 생이 공부는 하지 않고 고사장에 가는 것 같은, 당당하지 못한 자세인 것 같아서다.

  접수마감 한 달 전, 아내와 함께 가기로 하고 과감하게 접수를 했다. 연습량이 없어 완주할 수 있을까 하는 자신감이 없었던 게 사실이다. 그래도 한 달 간의 시간이 있으니 꾸준하게 연습하면 완주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완주도 하고 아내와 함께 호반의 도시 춘천에서 가을의 낭만과 추억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2km 지점이 지나자 내 딴에 지체한 시간을 만회하고자 속력을 올렸다. 하지만 잠시였다. 우려했던 복병이 터졌다. 가슴이 결리기 시작했다. 십리도 못가는 게 아닐까 불안하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가슴이 결려, 결리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달려야한다. 이렇게라도 쉬지 않고 달릴 수 있는 게 다행이다.  

   한 달간의 연습시간에서 보름 정도는 속보부터 달리기로 진도연습을 해왔고, 이후부터는 10km완주 연습을 할 계획이었는데, 담이 들면서 달리면 가슴이 결렸다. 업무엔 지장이 없지만 달리면 자주 결리는 증상이 내 발목을 잡아 몹시 불안하다. 약을 먹어도 쉽게 풀리질 않았다.

   자주 있는 일이 아니라서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겠지 하고 속보운동만 해왔는데 하루 이틀 지나면서 차도는 없고, 달리는 연습을 하지 못해 은근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약물로 치료하면 그때뿐이다. 결국 대회 날은 다가오고 걷기만 한 채 10km는 한 번도 달려보지 못하고 대회 전날 춘천에 도착해 공지천 부근에 숙소를 잡았다.  

   오후엔 풀코스 답사를 했다. 달리기로 체험할 수 없으니 자가용으로 여유롭게 달리며 경관을 즐겼다. 단풍이 물든 산과 끝없이 펼쳐진 북한강 줄기를 거느리고 정중앙을 달리는 쾌감은 어떤 것일까. 언젠가는 나도 이 아름다운 춘천마라톤 풀코스에서 자연과 함께 호흡하며 노래할 수 있는 날을 꿈꾸며 숙소로 돌아왔다. 

   긴장 한 게 분명 했다. 평소 잠이 들면 아침에 일어났는데 두 번이나 잠을 설쳤다. 몸도 무겁고 가슴도 짓누르는 것 같다. 아내는 곁에서 보기가 안쓰러웠는지 그렇게 아프면 포기하고 구경이나 실컷 하자고 한다. 러닝 화 망사 코도 터졌던데 잘됐네 하고는 부채질을 한다. 괜한 내색을 했구나 싶어, 잠도 안 오고 걱정이 들어 새벽에 공지 천 인조구장에 가서 현장을 돌아보며 몸이나 풀어보자고 나섰다.

   깜짝 놀랐다. 선수들이 잠자는 시간에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진행요원들은 일사 분란한 행동과 고생으로 우리들의 마당을 준비하고 있다. 스텝들을 보면서 가슴이 결리기는 해도 달려야겠다는 확신이 더 강해졌다. 여기까지 왔는데 해보지도 않고 포기한다면 후회할 일이었다. 

   스트레칭을 하고 가볍게 잔디구장을 돌면서 몸을 푼다. 아내 말대로 관광이나 하고 가면 편할지 모르지만 마라톤이 주목적이고 구경은 그 다음이다. 잊고 있었던 러닝화도 걱정이 든다. 품질이 좋아 너무 오래 신었나보다. 해지고 낡았어도 착용감이 뛰어나고 경량화로 오랫동안 발에 적응되어 연습하던 신발을 고집한 이유이다. 달리다가 발가락이 삐져나온들 달리지 못할 이유는 없다.  

   처음 참가한 춘천마라톤에서 당당하게 맞서고 싶다. 내가 바라는 것은 결리는 아픔이 걷는 정도만 아니길 간절히 바라며 달린다. 십리지점을 지나자 결림에도 불구하고 달리고 있는 내 자신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한 달간 연습 중 대부분 속보였는데, 8년 전의 내 몸이 반응한 것일까. 잠자고 있던 근육들이 깨어나 나에게 용기를 주는 것일까. 짧은 보폭으로 주로를 달리는데 견딜만했다. 작은 고통이나 갈등은 운동에서도 큰 깨달음과 희망을 주고 있다.

   반환점을 돌자 내리막길이다. 한 숨 돌리고 편안하게 달린다. 6km지점을 지나는데 앳된 녀석이 내 눈을 사로잡는다. 초등5,6년, 아니면 중학생일까. 체격이 왜소해 단정 지을 수가 없다.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씩씩하게 달리는 녀석이 대견스럽다. 파이팅을 외치며 지났지만 한 번 더 뒤를 돌아보며 기쁨을 얻는다.

   마지막 언덕길이다. 짧은 보폭으로 결림을 최소화 시키며 달려왔는데 언덕은 큰 벽이다. 발을 내딛는 충격이 클수록 결림은 컸다. 고통을 원망할 수도 없고, 현실을 받아들이며 인내한다. 고통을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고 했다. 정신력이다. 어떤 코스를 달리든 고통을 인내하며 자신을 속이지 않고 완주한다는 것은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다. 그렇게 달려왔고 그런 내가 되기 위해서 달린다.

   나를 질러가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그럴수록 내 의지는 점점 강해지지만 몸이 따르질 못한다. 비록 속도는 느리지만 걷지는 않는다. 2002년부터 2008년까지 단축마라톤을 하면서 한 번도 걸으며 완주한 적은 없다. 그것은 자신과의 약속이고 내 마라톤 사전에 신념을 깰 수 없기 때문이다. 

   터질 것이 터지고 말았다. 언덕을 오르면서 러닝 화 양 발가락 쪽에 작게 터졌던 망사 코가 끊기면서 발가락이 해방을 맞았다. 답답했던 발가락은 시원해서 좋지만, 구멍 난 러닝 화 망사 코의 울부짖는 절규소리에 가슴이 미어진다. 더 이상 조각날 수는 없다고 아우성치는 망사 코에 힘을 실으며 달릴 수가 없다. 비참하게 찢기는 러닝 화의 비명을 들을 수 없어 충격을 최소화하며 달린다.     

   언덕을 오르면서 가슴이 또 결린다. ‘아프면 포기하라.’고 한 아내의 말이 떠올랐다.  병을 사서 키우지 말라는 그 말을 왜 모를까. 그래, 고지가 바로 저긴데, 마지막 오르막길을 넘으면 골인지점이 보이는데 조금만 참고 달리자. 이를 앙 다문다. 아내의 말을 이미지 트레이닝하면서 정신력을 다 잡으며 달린다. 골인지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나를 지켜볼 것이고, 그 중에서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인 아내가 카메라를 들이대고 눈이 부시게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나를 위해서도 아내를 위해서도 완주는 역사적 사명이다.

   다시 내리막길을 달린다. 아파도 결려도 오르는 속도보다는 빠르게 내려간다. 묘한 일이다. 사람의 마음이 참으로 신기하다. 골인지점이 다가오면서 사람들의 응원소리가 뭣이라고 표정관리하게 되고 언제 아파서 달렸냐는 듯 입가에는 미소까지 지으면서 달려 골인한다. 춘천마라톤 처녀출전에 가슴이 결려서 발목을 잡으려 했지만 당당하게 이겨내고 골인지점을 통과한다.

   오늘도 내 마음의 마라톤 역사에는 부끄럽지 않은 한 줄의 글을 남길 수 있어 행복하고 쾌감을 느낀다. 터진 러닝 화를 고집할 수밖에 없었던 만큼 신발한테도 고마움을 전한다. 가슴이 결려서 달리는 나보다도 비참했을 러닝 화가 더 고생했다고 말이다. 오늘을 계기로 8년 간 뒷전이었던 마라톤을 다시 시작한다. 그것은 아내와 함께 그 고장으로 여행을 떠나는 날이기 때문이다. 

   대회 전날 도착해 김유정 문학 촌, 문배마을, 구곡폭포, 소양강스카이워크, 강촌 레일바이크 등 관광명소를 둘러보고 양일 간, 춘천의 닭갈비와 막국수로 식사를 맛있게 먹었다. 완주 후, 남이섬 구경은 신비의 섬, 평화의 섬이었다. 춘천 마라톤대회를 통해서 많은 것들을 체험하고 가슴속에 새기게 됐다. 오래도록 잊지 못할 순간들이다. 풀코스 답사에서 느꼈듯, 춘천마라톤은 아내와 여행하는 날이다. 아름다운 풍광과 순리를 거스를 수 없는 강줄기를 즐기며 달릴 수 있는 내년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끝으로 새벽부터 늦게까지 큰 마당을 깔고 안전한 축제를 준비한 대회 관계자, 봉사자, 시민여러분께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행복한 여행이었다고 말입니다. (배번호24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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