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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走路에서 드는 생각들
| 정재웅 | 2017.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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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달리기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고 나서다. 작가는 달리기의 장점이나 작가 스스로 달리기를 한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을 일방적으로 독자에게 떠 벌리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달리기가 작가에게 주는 영향 내지는 소소한 의미들을 소박하게 적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이 책을 읽고 나서 달리기에 대해 더 알고 싶어지는 마음이 이어졌고, 이후로 관련된 책들을 구해서 마구 마구 읽었다. 그 때 읽은 책들이 “달리기와 존재하기-조지쉬언”, “본투런-크리스토퍼맥두길”, “철학자가 달린다-마크로렌스”, “울트라마라톤맨-딘카르나제스”, “우리는 왜 달리는가-베른트하인리히”, “나는 달린다-조쉬카피셔” 등이다. 이쯤 되다 보니 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이때까지는 마라톤은 커녕 10Km를 달린다고도 상상 하지 않았다. 퇴근 후 집 근처 탄천변을 조금씩 달리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입지도 않고 옷장에 방치되어 있던 오래된 반팔 면셔츠에다가 반바지를 입고 말이다. 그때 만약 누군가가 내가 뛰고 있는 꼴을 보았다면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 분명하다. “재는 도대체 왜 뛰는 거야, 걷는 것보다 빠르지도 않으면서”, “저렇게 배나온 사람도 달릴 수 있는 거야?” 그렇지만 날이 갈수록 달리는 재미에 나도 모르게 조금씩 빠져 들었다. 탄천변의 시원한 바람, 계절에 따라 변해가는 천변의 나무잎, 피고지는 꽃들. 돌이켜 보면 이런 것들이 이전에는 몰랐던 달리기가 나에게 준 선물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1키로미터를 뛰다가 걷다가 헥헥거리고, 다리가 풀려서 허느적 거리던 처음의 내 꼴이 아주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던 것은 물론이다. 어느덧 5Km를 달리게 되고, 5Km를 달리고 나니 그보다 적게 달리면 뭔가 부족하게 느껴지고, 얼마 안지나 10Km까지 뛸 수 있게 되었다.

이러다가 우연히 흑인 방송가인 오프라 윈프리의 마라톤 도전에 대한 기사를 읽고는 바로 하프마라톤을 신청하고 말았다. 이게 달리기를 시작하고 반년쯤 된 무렵의 그해 12월 이었을 것이다. 잠실 운동장에서 출발해서 한강변을 달려 암사유적지 근처를 돌아 오는 코스였다. 경기에 참여 하는 내내 모든 것이 생소하고 긴장과 설레임 이런 것들이 힘들지 않게 나를 감쪽같이 속인 하루였다. 한강변의 찬 바람을 가르면서 골인하는 순간은 한없이 유쾌했다. 나 스스로 뭔가 대단한 것이라도 한 것처럼 가슴이 자부심으로 가득했다. 인류를 구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뭐 별것 아니잖아. 나도 이제 마라톤 맨이야. SNS에 경기 참가 사진도 올리고, 만나는 사람마다 소감도 거창하게 떠들어 대고…. 아무튼 좋았다. 그 이후로 여러 번 하프마라톤에 참가해서 달렸는데, 달리면서 보는 그 곳은, 느끼는 감정은, 그리고 달리는 나의 존재는 평소의 나와는 차이가 있었고, 그 차이가 또 다른 나의 소중한 일부가 되어 갔다.

2015년 가을에 마라톤 풀코스에 처음 참가를 하게 되었는데, 우연히 단풍과 호수가 들어간 마라톤 경기를 알리는 포스트 한 장을 본 것이 계기였다, 그게 의암호 주변을 달리는 춘천마라톤이었다. 가을의 전설이라는 슬로건이 식상하기는 했지만, 이 포스트를 보는 순간 아, 여기서 뛰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이 생겼다. 두어달 남은 기간 동안 준비를 잘해서 멋지게 달려야지 하는 처음의 각오는 어쩌고 연습은 제대로 하지도 않고 시간은 흘러가고, 그래도 타고난 멘탈은 있어가지고 어떻게 되겠지, 하프는 달려 봤으니 30키로 까지는 어떻게라도 뛸 수 있을거야, 안되면 그 이 후는 걷지 뭐… 이런 생각으로 나의 첫 풀코스 달리기는 시작이 되었다. 보통사람들이 봤을 때 대단한 것처럼 보이는 뭔가를 해낸 놈이 장땡이라고 어쨌든 완주를 하고 난 다음의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우쭐대기 시작했다. 그 때 나를 만났던 모든 사람들은 아마도 듣기 싫은 달리기 얘기를 듣고 또 들었을 것이고 가능하면 나와 말 섞는 것을 피하지 않았을까? 

그래도 몇 가지 소중한 것을 같이 얻었다. 출발선에서는 군악대가 그리 크지 않게 연주하고 있었는데, 비슷한 목적을 가진 긴장한 군중이 가슴을 울리는 북소리를 들으면 군중은 자신도 모르게 최면에 빠지겠구나 하는 상상을 하면서 출발선을 지나 뛰기 시작하면서 긴장감은 점차 안도감으로 변해갔다. 처음의 오르막 구간을 지나고 순식간에 5Km 지점을 통과했다. 의암호가 한눈에 조망되기 시작하고 댐을 지나 사진으로만 보아왔던 삼악산 단풍, 그 삼악산 그림을 거울처럼 비치고 있는 의암호, 그 사이로 난 길은 오늘 하루만큼은 주로가 되어 내가 달리고 있다. 달리기를 할 때는 평소와 달리 생각이 머리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 아 참 아름답구나, 다음 Km 표시판은 저 멀리 어디쯤에 있을까?, 호흡이 아직은 괜찮은데, 다음번 급수대에서는 물대신 스포츠 음료를 마셔야지……. 오만가지 생각들이 시킨 것도 아닌데 빠른 속도로 왔다가 사라져 간다. 29Km 오르막의 끝을 올라 춘천댐을 지날 때는 이미 내 체력이 바닥나고 이런 저런 상상을 하던 내 머리는 이제 작동을 멈춘다. 어느덧 내 의지와 상관없이 걷기 시작한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짧게 이어지고, 큰 도로를 만나고 걷다가 뛰다가, 걸으면 걷는데로 힘들고 그래서 다시 뛰기 시작하면 또 걷고 싶고…. 아 정말 힘들구나… 이때의 내 상태를 말할 것 같으면 양다리는 힘이 없어서 위태롭고, 몹시 허기지고, 머리 속은 허리멍텅하여 별 다른 생각이 나지 않는다. 죄송하지만 콜라 한잔 주실 수 없을까요? 나도  모르게 도로변에 콜라병을 든 분에게 애원을 한다. 이런 꿀맛이… 즉시 에너지로 변해서 다리로 전달되는 것 같다. 문제는 얼마 가지를 못한다는 것이다. 체면이고 뭐고 생각할 겨를이 없다 콜라병을 든 분이 눈에 들어오면 바로 가서 또 구걸한다. 그렇게 소양대교를 지나고 피니쉬를 알리는 아치가 눈에 들어온다. 내 다리가 아닌 것 같은 두 다리를 겨우 겨우 움직여서 맡겨놓은 물품을 찾고 기다리던 집사람과 만난다. 마치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42.195 풀코스 정도는 별거 아니라는 몸짓으로 집사람에게 거드름을 피우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안도의 기쁨과 희미한 행복감에 도취되는 것으로 나의 첫 풀코스는 막을 내렸다.

그 다음해는 봄부터 가을까지 회사에서 수행하는 프로젝트 일이 바빠서 달리기를 거의 하지 못했고, 춘천마라톤 참가를 포기했다.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한 해를 보냈는데, 7개월 남짓한 이 기간 동안 휴일을 포함해서 손으로 꼽아보니 집에서 쉰 날짜가 5일 정도 되었다. 허구한날 밝아오는 새벽녘에 퇴근을 했고, 극심한 스트레스에 체중은 하염없이 늘어갔다. 사무실에 자리를 깔고 쪽 잠을 자고 일어나 충열된 눈으로 일을 다시 시작하는 동료를 볼 때 너무나 가슴 아팠다. 마치 뜨거운 여름날 낙타 무리에 짐을 가득 싣고 끝없는 사막을 횡단하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낙타를 몰고 가는 물이꾼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사막 중간 쯤에서는 내가 낙타가 되기도 하고 짐이 되기도 하는 이상한 환영에 시달리곤 한 시기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시기에 내가 가장 하고 싶은 것이 달리기였다. 무작정 회사옆 탄천으로 나가서 10키로 정도를 숨이 턱밑까지 차고 땀이 흠뻑 나도록 뛰고 나면 몸에 생기가 돋곤 했다. 이때 나는 결심을 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내년 가을에는 춘천으로 가겠다고…

2016년 가을, 다시 온 춘천은 2014년 때의 경험을 뒤살려 마음속으로 한가지 결심을 했다. “주로에서 걷지는 말자”. 걷지 않고 끝까지 달려서 골인지점을 지나면 나 자신, 마라토너라고 불러도 될 성 싶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내 결심은 허무한 약속에 불과했다. 35Km 지점에서 완전히 퍼져버렸다. 도저히 그때의 일을 표현하지 못한다. 그야말로 지옥을 경험했다. 지금 생각하면 35Km 지점에서 피니쉬 라인까지 어떻게 왔는지 불가사의 할 뿐이다. 이 구간의 기억이 지금의 내 기억에는 아예 사라지고 없다. “안되겠다 다음 가을을 위해서 지금부터 연습을 하자.” 

2017년 춘천 마라톤 신청을 하고 난 뒤 나는 달리기 동호회에 가입을 했다. 일요일 새벽에 달리기를 하는데 이곳 분들의 훈련량은 내가 하는 것의 3배쯤은 족히 되었다. 산악훈련을 하기도 하고 장거리 훈련도 하였다. 한마디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늦잠을 즐길 시간에 일어나 달리고, 달리면서 지난 일주일의 생활을 뒤집어 보고, 또 시작할 일주일의 각오를 새롭게 하는 계기로 삼았다. 그분들이 하는 훈련을 다 따라가지는 못했지만 많은 것을 배워 나갔고 어김없이 10/29일 새벽을 맞이했다. 오늘의 목표는 한가지 작년에 이루지 못한 주로에서는 걷지 않는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쌀쌀한 날씨에 안개가 자욱하게 낀 아침이었다. 드디어 오랜 기다림 끝에 E그룹으로 출발선을 통과하고 최대한 천천히 달려 나간다. 절대 무리를 해서는 안된다. 하고 싶은대로 했다가는 호된 대가를 치른다는 것을 작년의 경험을 통해서 알기 때문이다. 4:00 페메 풍선이 지나가고 4:20 페메 풍선도 앞서 저 멀리 멀어져 갈 때는 불안감에 초조했고, 당장 쫓아가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는 것이 쉽지 않았다. 10Km, 15Km, 반환점을 통과하고 시간이 지나갈수록 호흡은 더 편안해 지고 다리의 움직임도 더욱 리드미컬 해진다. 완전히 걷히지 않아 삼각산 허리를 아직 감싸고 있는 안개가 의암호 물빛과 어울려 한없이 아름답게 느껴 졌다. 29Km 지점 춘천댐에 이르는 오르막 길도 가볍게 통과한다. 작은 오르막 내리막을 지나서 나는 달리고 있다. 조금 더 가면 35Km 지점이 나올 것이다. 작년에 내게 지옥을 경험하게 해 주었던 바로 그 지점에서 나는 올해 어떤 모습일까? 설사 작년의 그 상황을 맞이 하더라도 절대로 걸으면 안된다. 뛰어야 한다. 지옥을 만나서 걷는 것이 아니라 뛰지 않고 걷기 때문에 지옥이 되는 것이다. 마음속으로 각오에 각오를 다지는 와중에 어느덧 주로는 넓어지고 35Km 지점을 지나간다. 

몸이 괜찮다. 어 왜 힘들지 않지?.... 아니야 조금 지나면 작년의 고통이 엄습할거야….
 
자유 발언대에서 뭔가를 열심히 말하는 분이 눈에 들어오는 것과 동시에 나도 모르게 20년 세월을 같이한 집사람이, 그리고 아들놈들이 가슴을 울리고 지나간다. 그리고 뒤이어 어머니, 순간 울컥해지면서 내 얼굴은 울상이 되어 찌그러진다. 키워줘서 감사합니다 혹은 그 긴 세월 고생하셨습니다 뭐 이런 따위의 구체적인 생각이 떠오르지도 않았고 어머니라는 오직 그 한가지 상에 온 몸이 전율한다. 어디서 이런 감정이 나온 것일까? 평소에는 어머니 생각을 해도 오늘처럼 가슴을 먹먹하게 하지 않은 것을 보면 마라톤이 인간 내면 깊이 숨어 있는 무의식을 일깨우는 것이 분명하다. 어머니 생각도 잠시, 곧바로 마음이 진정되었을 때 나는 알았다. 이제부터 힘차게 달릴 준비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속도를 점점 올린다. 상체를 더욱 세우고 배와 옆구리 근육에 힘을 주고 달려나간다. 소양대교를 지나고 피니쉬 라인을 통과할 때까지 나는 작년에 경험한 그런 지옥을 만나지 못했다. 대신 주로에서 어머님을 만났다. 이제껏 살아오면서 한번도 만나지 못했던 그 어머님을 말이다. 궁굼하다. 내년 가을에 만날 어머님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 지.
(배번:6998 달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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