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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북이의 꿈
| 이진철 | 2017.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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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예쁜 삼악산의 시월 세단풍이 나를 부를 때면 나는 의암호반의 순례객이 된다.
나는 자칭 타칭 거북이지만 올해도 어김없이 친구들에게 메시지로 출사표를 남기고 춘천으로 떠나는데 죽마고우에게서 전화가 온다.
"역시 개근생이네. 올해는 내 여동생 현숙이도 춘천대회 출전해서 한바퀴 돌고 온단다. 처음 마라톤 대회 나가니까 혹시 만나면 손잡고 뛰어 주라"
"알았어. 만나면 동반주 하며 응원 하겠네"라고 말은 했지만 오년전 친구 회갑때 본  그여동생의 얼굴이 어렴풋하다.
더구나 전화번호도 확인 못하고 핸드폰을 물품 보관 했으니  수많은 사람 중에서 현숙 동생을 만나기는 시장 바닥에서 바늘 찾기나 다름없다.  
일찌감치 동반주를 포기 하고 마음 속으로 응원 하며 달리기로 다짐 했다.

금년 춘천마라톤대회는 출발 그룹이 강등 된 것이 줄서기 순서가 밀린 것처럼 서운해서 그룹 회복이 당위의 목표가 되었다.
다만 한여름에 게으름 핀 것이 뒤가 켕기는데 다행히 더위 타는 나에게 선선한 날씨에 단풍든 주변의 산들과 능라를 편듯한 의암호의 빼어난 풍광은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초반의 컨디션도 좋아서 순조롭게 의암댐을 지나쳐 삼악산 입구에 들어 서자 주로 옆에 자전거 데크 길이  나란히 이어져 있다.
문득 며칠전 라이딩으로 전국을 누비는 친구가 "올해는 내가 춘천에 자전거 타고 가서 응원 할께" 라고 하던 말이 생각 나서 앞으로 달리면서도 곁눈질을 계속 한다.
그러나 자전거는 연실 지나치는데 친구가 안보여 몹시 서운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친구도 나를 이쪽 저쪽으로 수차 달리면서 열심히 찾았다는데 수많은 달림이 중에서 나를 발견 하기가 쉽지 않았나 보다.
어째거나 서운한 마음을 접고 각양각색의 달림이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리면서 수려한 풍경에 취하며 지루함 없이 그럭저럭 달리다 보니 하프 지점을 지나친다.

나는 거북이라서 그런지 마라톤을 백오십회 완주 했어도 이븐 페이스가 되지 않는다.
항상 절반은 지났다는 안도감과 함께  부실한 근력으로  완주와 다리 경련이 염려 되기에, 오늘도 춘천댐 언덕 부터 속도를 줄여 달린다.
나는 사지가 멀쩡한 십대때부터 고혈압이 있어 조금만 달리면 숨이 가빠서 입으로 숨을 쉬곤 했다.
이러한 사정을 잘 아는 아내는 '잘 뛰라'는 응원 보다는 '천천히 뛰라'라는 주문만 해서, 애처가인 나는 거북이가  될 수 밖에 없다고 핑계를 삼는다.
출발전 다녀온 화장실을 달리다가도 한두 번은 출입을 해야 하고 그런 저런 이유로 거북이가 되었는데, 앞으로만 꾸준히 가는 거북이기에 별칭이 싫지는 않다.

34Km에 이르자 부대가 없어져 열열히 응원 해주던 장병들이 그리운데 다행히 물 한잔 건네준 봉사 학생들이 상의에 새겨진 '서울'이란 글씨를 보고, "서울 아저씨! 힘내세요!!" 라고 연거푸 합창 응원해주니 힘들어도 마음이 뿌듯하다.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에 힘을 얻어 달리다 보니 희망의 속삭임이 귓전에 맴도는 소양2교에 이르른다.
"이제 다 왔구나!"
나는  소양강처녀가 응시 하는 이곳에서 포기하는 달림이를 본 적이 없기에 이다리를 건너면 항상 다 왔다고 생각 한다.
하지만 기운이 진하고 힘이 다하여 두발이 '쉬어 가자'고 보채면서 발걸음이 무거워지는 지점이기에 소속 클럽과 지인들이 내뿜는 응원의 함성은 가장 높다.
"다 왔습니다. 힘내세요! 힘!"
"암, 인생 백년에 고락이 상반이듯 백오리 마라톤도 쓴맛 단맛이 반반인데 젖먹던 힘까지 다 내보자."
응원 봉사자분들의 꽹과리와 북소리 장단에 발을 맞추고 격려의 환성에 '지금까지 달린 거리 보다 남은 3Km가 더 힘들다'고 엄살을 떨기도 하면서 발이 나가지 않으면 몸으로 끌며 거북이처럼 오직 앞으로만 한걸음 두걸음 내달린다.
힘든 만큼 종착지는 가깝다.
어느새 아름차기만 했던 백오리 까막길의 골인아치가 먼산이 차창에 다가오듯 아련하게 시선안으로 들어 온다.
"드디어 환희와 감동의 완주인가?"
주로 양옆에 길게 늘어선 환영 인파의 대열도 점점 가까이 눈 앞에 다가온다.

"하나! 둘!! 하나! 둘!!"
구령 붙이며 달리기 몇 번만에 드디어 큰 숨 한번 몰아 쉬면서 골인매트를 힘차게 밟았다.
이어 건네 받은 완주 메달을 목에 걸고 수려한 의암호반 둘레길과 여덟번째 맑은 인연을 맺는다.
비록 완주 기록이 마음에 차지 않지만 아쉬움을 남겨 내년에 다시 찾아 올 이유라도 되었으니 그것으로 만족할 뿐이다.
기실 마라톤에 대한 나의 화두도 '빨리 달리느냐'보다는 '언제까지 뛸 수 있느냐'가 우선이고 이승의 소풍이 끝날때까지 달릴수만 있다면 더 큰 소망이 없다.
다만, 마라톤 대회에서 항상 뒷전에서만 맴돌아서 막판에는 급수대의 물과 간식이 바닥나 주린배를 움켜쥐고 서운하게 달릴때도 종종 있기에 중간에라도 갔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도 있다.
그래서  육십 중년 삭신의 찌꺼기를 땀 흘려 정화 시키고, 완주의 기쁨으로 이마의 주름 하나를  지워서 회춘 하는 오늘 밤에는 '날개 단 거북이'의 현몽을 기대해 본다.   
비록 단꿈일지라도 날로달로 달리어 마른 땅을 적시다 보면 어느 먼 훗날, 토끼의 그림자 밟고 만세 부를 날도 있으리라.
그날을 위해 운동화 끈을 다시 조이며 논 자취는 없어도 땀 흘린 공은 남는다는 믿음으로, '내년에는 출발그룹 회복의 숙제를 기필고 이루겠다'고 가슴에 손을 얹는다.

           (배번 : 7296. 이름 : 이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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