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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빠가뛰면 딸이뜁니다
| 심육택 | 2017.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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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춘천마라톤 참가후기
참가자 이름: 심육택
배번호: 2802


                                               <아빠가뛰면 딸이뜁니다>


 15년 전쯤, 나이 마흔을  갓 넘긴 아버지는 우연히 달리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매일 힘든 업무와 연이어 이어지는 회식 등으로 불어난 체중과 과도한 스트레스를 이겨 내어볼 요량이었다. 1킬로를 뛰는 것에서부터 책자와 인터넷으로 달리기의 지식을 습득하며 10킬로 대회를 몇 번  참가 해 본 후 어느 날, 작은 달리기대회에서 드디어 마라톤 완주의 꿈을 이루게 되었다. 그 후  2004년, 처음으로 조선일보 춘천마라톤을 참가 후 2016년에는 이른바 <명예의 전당>이라는 아마추어 마라토너에게 있어서 최고의 영광을 받게 되었다.

 아버지에겐 딸이 하나 있었다.  그 아버지는 흔히 말하는  <딸 바보> 아빠였다.  딸은 성장해 대학을 마치고 더 큰 꿈을 향해 서울에 있는 대학원을 진학하게 되었으나, 처음으로 가족과 떨어져 혼자 자취생활을 해야 했던 딸은 낮에는  조교업무, 밤에는 대학원 수업으로 쳇바퀴 생활을 보내면서 점점 외로움을 타며  지쳐갔다.

 아버지는 그런 딸에게 달리기를 한번 해볼 것을 권했다. 심신의 탈출구가 필요했던 딸은 어려서부터 보아온 아버지의 달리기하는 모습을 떠올리며 학교 운동장과 근처의 체육관을 시작으로 새벽 달리기를 시작했다. 힘든 시작이었지만 곧 익숙해져서 어느덧 하루라도 달리지 않으면 오히려 몸이 더 힘들 정도로 신체를 단련시켰다.

 2년 동안, 딸은 10킬로 대회를 10번, 하프 마라톤을 6번 참가하고 난후, 아버지에게 조심스럽게 상의를 하였다. -춘천 마라톤을 한번 완주해 보고 싶다고-

 아버지는 흔쾌히 동의하며 <춘마>에서 동반주를 해 줄 것을 약속했다. 2017년 10월 29일 아침 6시, 대구에서 올라온 아버지와 서울에서 전철로 춘천에 도착한 딸은 공지천 옆의 작은 식당에서 반가운 조우를 하였다. 한 달 전 장거리 연습 후 무릎 통증을 호소하던 딸은 양측에 무릎 보호대를 착용하고 있었다.

 오전 9시, 아버지와 딸은 드디어 춘천마라톤 출발선에 섰다. 등에는 아버지가 미리 준비한 <아버지와 딸>이라는 배너를 똑같이 붙이며 완주의 의지를 불태웠다. <배동성>씨의 신나는 출발 신호와 함께 마라톤 완주의 첫발을 내디뎠다. 더없이 청명한 가을의 하늘과 함께, 조금 쌀쌀한 날씨는 마라톤을 즐기기에 최상이었다. 게다가 맑고 잔잔한 의암호수와 주변 삼악산의 단풍은 커다란 용암이 붉게 흘러 내리는 것 같은  달림이들의 거대한 띠와 어우러져 환상적인 장면을 연출하였다. <가을의 전설>의 시작이었다.

 아버지는 10킬로 지점을 통과한 후 딸의 무릎 상태가 좋지 않아졌음을 직감했지만 딸아이는 계속 달릴 수 있다고 했다. 등 뒤의 배너를 보고 수많은 사람이 응원과 하이파이브를 해주었다. 인천에서 오셨다는 달림이는  <아버지와 딸>을 부러워하며 한참동안을 동반주를 해주었다. 신매대교 하프지점을 지나며 점차 안정되어 갔지만, 딸은 그 때 부터는 한번도 달려본 적이 없는 긴 여정에 직면하게 되었다. 차분히 레이스를 펼치던 중, 딸은 35킬로 지점을 지나며 눈에 띄게 속도가 줄고 무릎 통증이 심해지며 힘들어했다. 아버지는 쉬며 천천히 걸어가자고 했지만 딸은 달림을 멈추지 않았다.
 40킬로 지점에 이르렀다. 이제 2킬로 밖에 남지 않았으니 힘을 더 내어 보자고  말하는 순간, 피로와  통증으로 힘들어하던  딸은 아버지에게 눈짓을 한번 주더니 혼신의 힘을 다해 마지막 역주를 하며 결승점을 통과하였다. 5시간 12분 30초의 기록이었다.

 딸은 아버지를 붙들고 한참을 울었다. 아버지는 달리는 내내 작은 배낭에 넣어 다니던 딸아이의 춘마 완주의 염원을 담은 현수막을 꺼내어 기념사진을 찍었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세상 무엇도 바랄게 없는 고난을 이겨낸 행복한 아버지와 딸이었다. 

 딸아이가 달리는 동안 무엇을 생각하고 느꼈는지는 알수 없지만,  아버지는 달림이의 한사람으로서 5시간 동안 단 한 번도 쉬거나 걷지 않고 완주한 딸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막 사회 초년으로 중요한 시험을 앞둔 딸은 이 시대의 여느 젊은이들처럼  험난할 과정을 겪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 춘마 에서의  <아빠와의 동반완주>의 경험이 딸의 인생 항로에 커다란 담금질이 될 수 있음을 아버지는 믿어 의심치 않을 것이다.

 이제 축제는 끝이 나고 모두들 일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오늘도, 이 시대 최고의 마라톤 대회에서 딸과의  오붓했던 동반주를 다시 한 번 떠 올려보며, 10여년쯤 뒤  어쩌면 딸이 또다시 <명예의 전당>에 오를 수 있을 때까지  아버지와 딸이 함께 <가을의 전설>을 만들어 가는 행복한 모습을 상상해 본다.

                                                                         2017년 춘천 마라톤 완주자 심육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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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경
2017.11.21
멋진아버지와 함께 동반주하신 행복한 모습이 그려져 있어 너무 아름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