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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전자전
| 김상구 | 2017.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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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전자전

                                                                                              김상구(참가번호:721)
  만추의 호반, 춘천마라톤을 달리면서 가슴에 희망하나 품지 않은 이가 어디 있으랴. 올해로 아홉 번째 도전이지만 내 가슴에 품은 희망은 어느 해보다 묵직하다.

  두 손으로 배번호를 매만지며 출발선에 섰다. 조금 쌀쌀하다. 기록에 연연하지 않고 즐기며 달리자고 되뇌며 대장정에 올랐다. 몸을 달래며 함성이 메아리치는 터널을 지나 의암댐 신연교로 향한다. 붉게 물든 삼악산 단풍이 보이면 언제나 그랬듯이 오길 잘했다는 느낌을 받는다. 차츰 마음에 평온이 찾아온다. 본격적인 레이스에 돌입하며 아들을 떠올린다. 

 늦은 밤 축 처진 모습으로 귀가한 아들에게 배번호를 내밀었다. 간절한 바람으로 소원을 쓰라고 했다. 선뜻 ‘수능 대박 기원’이라고 큼직하게 적는다. 얼마나 불안하고 답답했으면. 가슴이 찡하다. 꼭 완주해서 수능시험에 임하는 아들에게 힘을 보태 주리라.

  내가 2002년 춘천마라톤에 처음 참가할 무렵 아들은 겨우 세 살이었다. 엄마 등에 업혀 고사리손을 흔들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 후로 방방곡곡 마라톤대회에 아들을 데리고 다녔다. 물품을 맡아 주기도 하고 내가 골인하면 먹거리를 챙겨 주는 등 매니저 역할을 톡톡히 했다. 하지만 오늘은 차마 같이 가자고 말할 수 없었다. 
  
  20km 지점을 지나 신매대교 반환점에 다다르자 야생마 같은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깜짝 놀라 뒤돌아보니 3시간 20분 페이스메이커다. 나를 에워싸듯 하더니 바로 추월해버린다. 천천히 달리면서 즐길 요량이었는데 순간 질주본능이 되살아나 거친 호흡으로 그들을 앞질렀다. 내리막 모퉁이를 돌아서자 발걸음 소리가 잠잠해진다.

  다시 아들과 함께한 지난날을 되돌려본다. 아들이 초등학교 때 집으로 가져온 시험 답안지를 보고 뒤로 넘어가는 줄 알았다. ‘마라톤에 대해 아는 바를 쓰시오.’라는 질문에 ‘마라톤을 하고 나면 먹을 것을 준다.’라고 쓴 것이다. 담임 선생님도 의아해했는지 붉은 펜으로 ×대신 ☆로 표시해 두고 아들에게 물음을 던지자 “우리 아빠 마라톤대회에 많이 따라 가봐서 알아요.”라고 대답했단다. 

  그러던 아들이 벌써 대학입시를 코앞에 두고 있다. 운동을 좋아하는 나를 닮아서인지 체대에 지원하기를 원한다. 평소 마라톤을 즐기는 나의 삶이 본보기가 되었으리라는 생각에 가슴이 뿌듯하다. 

  25km 지점까지는 별 무리 없이 잘 왔는데 온몸에서 불협화음이 나타난다. 오른쪽 배가 살살 아파지고 다리도 뻐근하다. 훈련량 부족에 오버페이스까지 더한 탓이지 싶다. 새로이 잘 다듬어진 다리 교각이 더욱 두렵게만 느껴진다. 미끄럼 방지 빗금을 밟는 것도 고통이다. 난코스 오르막길을 어떻게 지나갈 것인가. 잔뜩 겁을 먹고 춘천댐에 오른다. 예전보다 경사가 완만해진 것 같아 다행이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는 법. 언덕바지에 올라서자 보상을 하듯 휘감은 내리막길이 시원스레 이어진다. 

  35km 지점을 지나자 엄지발가락에도 통증이 몰려온다. 조금 걸어 볼까 생각하다가도 아들 얼굴이 떠올라 계속 발걸음을 재촉한다. 아들도 공부에 지쳐 포기하고픈 생각을 문득문득 했겠지. 하지만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새벽을 달리며 행복해하는 나의 모습이 긍정적인 암시로 다가가 또다시 의욕을 불태웠으리라. 

  소양2교를 지나자 3시간 20분 페이스메이커가 따라온다. 내심 목표로 했던 기록이 멀어질까 두려워 있는 힘을 다해 내달렸다. 넓은 직선도로로 지루한 코스인데 그나마 강한 햇볕이 없어 다행이다. 몸은 천근만근 체력은 이미 다 소진되었다. 아들에게 희망을 전해야 한다는 한결같은 마음뿐. 

  드디어 보일 듯 말 듯 하던 골인 지점이 시야에 들어온다. 나는 승리자가 되어 개선장군처럼 결승선을 통과했다. 완주기록 3시간 19분 20초, 두 손을 하늘로 펼쳤다. 완주 메달을 목에 걸고 조선일보 신문에 나온 듯 기념사진을 찍어 가족과 지인에게 전송했다. 축하 메시지가 휴대폰을 달군다. 이런 멋과 맛이 있기에 마라톤을 계속하는 게 아닐까. 

  한 번만 더 오늘 달린 길을 재연하면 10회 완주로 명예전당에 헌액된다. 내년에는 이 자리에서 아들의 응원을 받으며 10회 완주의 기쁨을 마음껏 누려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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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수
2017.11.11
아버지 감사합니다. 읽는 내내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남은 5일 끝까지 최선을 다해서 마무리 하겠습니다. 내년에는 춘천마라톤 함께 뛰어요
안희경
2017.11.21
포항지진으로 1주 연기된 "수능대박" 응원합니다
김상구
2017.11.21
고맙습니다. 안희경님 수기를 읽고 아들과 함께 할 내년을 그려봅니다.
오래도록 즐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