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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망을 준 마라톤 ! 삶에 환희를 준 첫 풀 완주!
| 정재준 | 2016.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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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준 마라톤 ! 삶에 환희를 준 첫 풀 완주!


마라톤이라고 할까? 달리기라고 할까?
아무튼 처음 달리기를 시작한 것은 10여 년 전 영남마라톤 대회의 10km였다.
아무른 준비도 없이 대뜸 달렸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집 주변 대구 스타디움에서 체계적으로 마라톤 연습을 하는 동호회를 목격하고, 바로 가입하였다. 
비로소 마라토너로서의 본격적인 달리기가 시작된 셈이다. 동호회 가입이후 3년 정도를 매주 일요일 아침마다 모여 개인적 역량에 맞게 뛰었지만 5km를 쉬지 않고 뛰어본 기억이 없다. 그렇게 조금씩 달리기와 친밀해 질 수 있었다.
2014년 동호회 회원 대다수가 조선일보 춘천 마라톤에 참가하는 대대적인 행사가 추진되었다. 비록 장거리를 달린 기억은 없지만 클럽 총무의 직책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10km코스를 신청하였다. 대회전날 밤 12시에 28인승 리무진 전세버스에 몸을 싣고 춘천을 향했다. 너무나 초보였기에 달리기에 두려움이란 것이 있을 수 없었다. 
 많은 사연을 남기며 대회 날 아침을 맞이했고 이곳저곳에서 참가 기념  사진 촬영한 후 10km출발선에서 달리기는 시작되었다. 별로 힘들지 않게 10km반환점까지 달렸지만 그렇게나 아름답다던 의암호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거 뭐야! 여기까지 와서 의암호도 못 보고 간다는 거야” 
어이가 없었다. 
그래서 의암호가 보일 때 까지만 가보자 하고 달렸는데 17km지점, 이제 돌아오지 못 할 곳까지 와 버렸다. 
대회에 몇 번을 참가한 선배님들이 하프지점(신매대교)에 가서 돌아오지 말로 곧장 다리를 넘어가면 27~8km정도 되니 그렇게 가면 골인 지점이 나온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10km배번호를 달고 하프지점에서 곧장 다리를 넘어 결승 지점까지 달려 들어왔다. 
 당연히 기록도 없는 실격자의 표상이었다 . 
 마라톤 동호회 회원이면서 풀코스 한번 뛰지 않은 본인 스스로 용서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기필코 달려보리라 마음먹었다.
 사실  2년 전 뇌출혈론 약 18개월간 병원에서 병마와 시달리면서 몸은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졌다.
 2016년 2월 무사히 퇴원을 하였다. 그리고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동호회 공식참가 대회로 정해진 2월 밀양아리랑 마라톤 대회에 하프코스 출사표를 던졌다.
  대회 신청은 했지만 과연 이 몸으로 달릴 수 있을까 스스로도 걱정이었다. 그래서 혼자서 부지런히 연습에 매진하였다.
 2개월 만에 9kg의 몸무게가 빠질 정도로 열심히 달렸다.
 21.0975km 대회를 달리기 위해 2개월간 400km를 달렸다.
 그 결과 2시간 14분이라는 기록을 내며 골라인을 밟게 되었다.
 골라인을 들어오는데 두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이제는 살았구나!’ 
 ‘이제 다시 일어서는 거야!’ 
 그렇다
 기록이 좋아서 운 것이 아니라 
 해냈구나! 이제 정말 살았구나!
 라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울꺽 눈물이 나온 것이다.
 마라톤은 나에게 희망과 꿈을 준 운동이었다 
 이후 거의 매일 10km이상씩 달렸다.
 드디어 70회 조선일보 춘천마라톤 참가자 접수가 시작되었다는 공고를 접했다.
 앞뒤 가릴 것 없이 풀코스를 신청했다.   
 지금 이 나이에 춘천마라톤 첫 풀을 달리면 10년 후 60세 나이에는 10회 참가자로 명예의 전당에 등재될 수 있다. 
 희망과 도전의 욕구가 싹트기 시작했다.
 춘천 마라톤 D-100일을 잡아 스스로 본격적인 훈련을 시작했다.
 가급적이면 오르막코스를 택해 이틀 간격으로 20km씩 달리고 또 달렸다. 
 대회에 임박한 D-15일을 남겨 두고는 3일에 한 번씩 20km코스 훈련을 하였다.
 나름대로 km당 평균 페이스를 기록해 가며 연습에 연습을 거듭한 끝에 평균 5분 페이스를 맞출 수 있었다.
 가족의 만류,
 직장동료의 염려,
 그리고 마라톤 동호회 회원의 걱정 속에 42.195 코스 F그룹으로 참가하였다.
 가을의 전설 춘천 마라톤 대회당일
 배동성 사회자와 참가자가 모두 함께  F그룹  출발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절대 무리하지 않겠다, 기록에 연연해하지 않겠다. 오직 완주만을 목표로 한발 한발 내 디뎠다.
  6km지점쯤 가니 D그룹에 달리던 동호회 회원 한 무리를 만났다.
 조금 빨랐나? 라고 생각하며 시계를 보니 역시 과페이스를 한 것이 사실이다.
 그 속도로 매정하게 회원들과 작별을 하고 앞으로 내달았다.
 7km지점에서 터널을 맞이하였다. 마라토너들은 이구동성 속에서부터 차오르는 숨가쁨을 함성으로 토해냈다.
 그 울림의 함성이 아직도 웅장한 교향곡 연주처럼 귓가에 쟁쟁 거린다. 세상 어디에서도 들어볼 수 없는 춘천마라톤만의 협주음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아마도 그 울림의 교향곡은 영원히 잊지 못할 거대한 추억으로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다.
 드디어 3년 전 그냥 지나갔던 하프지점까지 도착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시계를 보았다. 1시간 50분밖에 지나지 않았다. 
 어라! 이 속도로 가면 서브포는 할 수 있겠다! 라는 생각에 
  21~26km지점은 욕심을 많이 내었다. km당 4분 페이스로 달렸으니 말이다. 
 그런데 웬걸 멀리 춘천댐 다리가 보이는서상대교 긴 다리 난간 코스를 보는 순간 입에서 악소리가 났다. 
경관의 수려함과 너무나 멀게만 느껴지는 거리감 때문에,그래도 춘천 마라톤에서만 공급하는 25km지점에서의 파워젤! 에 대한 고마움을  절실히 느꼈다. 세심한 주최측의 배려에 다시금 감사드립니다.
 드디어 황영조 선수도 포기할 뻔 했다는 마의 30~35km구간을 맞이했다. 
 도저히 뛴다는 것이 불가능하다.
 속도는 자꾸만 늦어졌다.
  이게 마라톤의 벽이란 거구나 싶다.
 시계를 보고 또 봐도 도저히 3시간대에 달릴 수 없을 것 같다.
 하프에서의 희망과는 달리 자꾸만 속도는 절망으로 치닫고 있었다.
 그래도 포기할 순 없다.
 끝까지 걸어서는 안 된다는 오기도 생겼다.
 저 멀리 자유발언대가 보인다.
 이왕에 늦은 것 나도 한마디! 근데 편집되어 잘린 것 같다.
 자유발언대에 서서 순서를 기다리며 10분의 시간을 보냈다.
 물론 좋은 휴식 시간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 휴식이 있었기에 결승선 까지 무사히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조선일보에서 소개한 코스별 전략에 따라 기록에 욕심을 좀 내 볼까 하고 35km지점부터 속도를 내려 시도를 했는데 도저히 속도를 낼 수가 없다, 아니 달리고 있는 자체가 신기하게 느껴진다. 완벽한 전략의 실패다. 사실은 걷기도 힘들었다. 
40km지점을 통과하고 이제 다 왔구나! 라고 안도의 한숨을 쉬는데
 연도에서 한 시민이
 “이제 2.5km밖에 안 남았습니다!”라며 응원을 보낸다.
 순간 온 몸에 힘이 축 빠졌다.
 이건 응원이 아니라 저주다! 라고 생각을 했다.
 혼자 속으로 
 “이양반아! 2.5km남은 게 아니라 2.195km밖에 안 남았어 왜 이래!”
 지금까지 달려온 것이 억울해 이를 악물고 마지막 까지 열심히 걷다가 달렸다가를 반복했다.
 이렇게 내생에 첫 풀코스를 완주했다. 
 4시간 25분대라는 저조한 기록이지만 난 해냈다!
 가랑비 속에 완주 기념 매달을 목에 걸고, 허기져 오는 배를 채우기 위해
 눈물 반 빗물 반 흥건하게 적셔진 소보로 빵을 우걱우걱 얼마나 맛나게 먹었는지 모른다. 마지막 골인 지점에서 한 봉지의 빵과 음료를 준비해 준 주최 측의 세심한 준비에 다시금 감사함을 전합니다.
 조선일보 춘천마라톤 풀코스는 새로운 삶을 향한 도전 이었다!
 그리고 완주했다!
 앞으로 9회 더 완주! 할 거고 해 야만 한다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춘천마라톤 10회 완주하는 해는 
 개인적으로 직장에서는 정년퇴직의 해요.
 내 인생은 환갑으로 새로운 삶이 또 시작되는 해가 된다.
 첫 풀코스를 향해 꾸준히 준비했듯이 제2의 인생도 차분히 준비해야겠다.
 대회 후 보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 후유증이 남아있다. 그래도
 내년에 다시 개최될 춘천 대회가 너무나 간절히 기다려진다. 
약간 조급증이 심한가 보다. 다시금 이번에 느낀 스릴과 환희를 즐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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