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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러스트 링을 통한 선물
| 김은경 | 2017.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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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회의 풀 코스를 완주한 내게, 사람들은 계속 묻는다. 
왜 뛰냐고, 숲과 그늘이 있는 등산도 있고, 시원하고 상쾌한 수영도 있는데, 
땀이 뚝뚝 떨어지고, 숨이 차 폐가 터질 것 같은 그 힘든 달리기를 
왜 하냐고 묻고 또 묻는다. 
  
  사실 내가 열심히 뛰는 이유를 나도 잘 몰랐다. 
하지만 확실한 한 가지는 달리는 동안 내 몸에 생기는 무언가 좋은 느낌과 기분이다. 
나는 그것을 “내가 내 몸에 주는 선물” 이라 말한다.

  2015년 가을, 하프 마라톤이 나의 최고 거리였다.
친구들을 따라 무작정 춘천으로 향했고, 워크 브레이크 주법으로
 5시간 32분만에 가까스로 완주했다. 
물론 완주의 성취감도 있었지만 그 희열과 만족감보다는 고통과 힘듦이 더욱 컸다. 
처음으로 골반과 다리뼈가 조각조각 부서지는 느낌을 받았고, 
두 눈엔 다래끼가 돋았으며, 입안이 온통 혓바늘로 뒤덮였다. 
그 날 이후 회복기간은 2주나 되었다. 
  
  다행히 너무도 아팠던 풀 코스의 첫 기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덕분에 작년 춘천마라톤에서 4시간 15분으로 완주를 하였고, 회복기간은 단 3일이었다.  
일 년 동안 정말로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다. 

  그리고 이 무렵 부쩍 나의 관심을 끄는 사람들이 생겼다. 
 "시각장애인 마라톤"
 하지만 관심만 있을 뿐이지 서브4도 못하는 허접한 실력의 마라토너인 나는 
감히 그 분들과의 동반주는 꿈도 꾸지 못하였다. 
나 혼자서도 잘 뛰지 못하는데 괜히 동반주를 하였다가 넘어지거나, 
퍼지기라도 해서 민폐를 끼칠까 염려스러웠으며, 
또한 시각장애인들은 선천적으로 특출 나게 잘 뛰시는 분들만 
달리기를 한다는 선입견이 있었다. 
그래서 그 분들은 매우 전문적인 감독이나 코치에게 
무언가 더 특별한 훈련과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컸었다.
  
  그래도 대회를 나가보면 계속 눈에 들어오는 시각장애인 동반주에 대한 관심은 계속 되었고, 
춘천 마라톤에서 얻은 자신감으로 용기를 내어 동반주 훈련의 문을 두드렸다. 
매주 남산에서 시각장애인들이 모여 훈련을 하는데,
내가 간 첫 날의 훈련은 약 7.5킬로 정도를 살살 걸으면서 동반주를 하는 것이었다. 
  
  훈련 첫 날, 내 뒷머리를 탁 치며 드는 생각이 
시각 장애인들이라고 달리기를 하는 데에 있어 전혀 특별할 것이 없다는 사실이다. 
남산 훈련장엔 그냥 비 시각장애인들과 똑같은 달리미들이 있을 뿐 
특별하게 전문적인 관리를 받는 마라토너는 없었다. 
  
  시각장애인들도 모두 다 처음 달리기를 시작하는 사람,
5케이, 10케이, 풀 코스 주자, 100회 완주자,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는 서브3 주자 등, 
비 시각장애인들과 똑 같은 과정으로 연습을 하고 노력을 하며 달리는 것이다.
더 특별한 보호나 관심은 필요가 없다. 
내가 2년전 다리가 부서지는 느낌으로 달리기를 시작했듯이, 
그들도 똑같은 단계를 겪으며 뛰는 것이다. 

  다만, 손만 잡고 뛰면 된다. 
그 손을 잡는 데에는 꼭 서브4의 실력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물론 선수 출신의 전문가가 동반주와 훈련을 해 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나와 같은 평범한 실력의 일반 달리미들도 충분히 손을 잡아줄 수 있다. 

  나는 올해 춘천 마라톤을 세 번째로 참가한다. 
내 인생의 최고 기록은 작년의 춘천 마라톤이었으며, 
올해도 새로운 기록을 위하여 훈련하며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올해는 조금 더 특별하게 시각장애인 동반주를 한다.
나의 동반인은 이미 나와 풀 코스를 비롯 대회 호흡을 여러 번 맞추었지만, 
기록경신을 목표로 함께 뛰는 것은 이번 춘천 마라톤이 처음이다.
나는 그 분에게 나의 손을 빌려주고, 그 분은 나의 페이스 메이커가 되어주신다. 
  
  시각장애인 동반주 시 서로의 팔에 끈을 묶고 달리는데 이 끈을 "트러스트 링"이라 부른다. 
나는 올해 춘천 마라톤에서 이 트러스트 링을 통하여, 나의 시각장애인 동반주자에게
 “내가 내 몸에 주는 최고의 선물”을 서로 즐겁고 행복하게 주고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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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준
2017.09.10
축하합니다. 쉽지 않은 결단에 감사합니다. 아름다운 레이스 파이팅하세요
길현진
2017.10.06
이름과 내용으로 어느 분이신지 쉽게 짐작할 수 있네요^^ 이번 대회도 힘내시길 바랍니다~!